60년 넘은 이 고통 누가 안단 말인가

포천 미군 사격장 피해 정부 외면 속 ‘오늘도 사격 중’
“이제는 사격장 폐쇄다” … 총선 후보 서약 받을 계획

  • 입력 2016.04.01 16:42
  • 수정 2016.07.13 23:32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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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국가다”라는 드라마 대사가 유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드라마를 두고 “애국심을 고취하고 국가관 확립에 교육적인 드라마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비단 세월호 침몰의 비극뿐이 아니다. 경기도 포천시의 농민들은 60년 넘는 세월 동안 미군의 사격연습에 노출돼 전쟁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포탄과 탄환이 마을과 축사로 떨어지고 밤낮없는 포격에 창문이 깨지고 기르는 가축은 유산한다.

지금도 포천에선 미군의 포격이 계속되고 있다. 농민들은 60여년을 참다 사격장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또, 20대 국회는 어떤 답을 줄 것인가.

▲ 지난달 29일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건트레이닝 사격장에서 미군이 자주포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건트레이닝 사격장을 찾으니 마침 미군의 자주포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이 사격장은 인근 로드리게스 사격장의 탄착지점인 불무산과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다. 이 곳에서 포를 쏘면 불무산 기슭에 탄이 맞아야 한다.

그러나 잘못 쏘면 탄착지점을 훨씬 넘어 야미리 방면으로 탄이 날아간다. 당장 지난해 3월엔 민가 옥상에 105㎜ 대전차포 연습탄이 떨어졌고 한 축사에선 불과 보름 사이에 연이어 M-910 탄환이 발견됐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30일엔 성동2리 한 기도원에 토우 대전차 미사일이 낙하되는 사고가 터졌다. 반경 1㎞엔 86세대 24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지난 2월에도 민가 마당에서 탄환이 발견됐다.

오발탄 사고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은 간접 피해도 상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10일엔 건트레이닝 사격장에서 사격할 당시 진동으로 사격장에서 700m 떨어진 민가의 유리창이 깨졌다.

이틀 뒤엔 사격장에서 2㎞ 떨어진 축사에서 한우암소가 새끼를 유산했다. 이정직 오가3리 이장은 “소가 쌍태를 유산했다는 연락이 와서 수의사를 불러 진단을 했는데 포 사격이 원인이라고 하더라”라며 “그렇다면 가축비육이나 우유생산도 줄었을 수 있는데 그런 간접 피해를 합하면 하루에 얼마나 손해를 보는 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장은 “그 전에는 피해가 있어도 말도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너무 억울하다”라며 “포를 쏘면 사람 속까지 울린다. 포 소리에 귀도 잘 안 들린다”고 호소했다.

로드리게스 사격장은 면적이 여의도의 4배(13.52㎢)에 달하는 사격훈련장이다. 주한미군뿐 아니라 기타 해외지역에 주둔하거나 파병되는 미군들도 이 사격장에서 훈련을 종종 진행한다. 밤에도 야간훈련차 포 사격이 이어진다.

최명숙 야미2리 이장은 “마을로 실탄뿐 아니라 파편도 비일비재하게 날아온다”라며 “큰 사건이 터질 때엔 미군이 와서 사과를 하는데 그 때 뿐이다. 정부에 안전대책을 요청해도 소용이 없다”고 탄식했다. 최 이장은 “2년 동안 동네에 포탄이 7번 떨어졌다”라며 “우리에 대놓고 총질하는 격이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안보란 2글자를 우리만 짊어져야 하는지 꼭 써달라”고 기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무려 60년 넘게 이 고통을 견뎠다. 미군이 우리나라 안보를 지켜준다니 참았다. 그러다 2년 전부터 안전대책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됐다. 한 번 터진 분노는 사격장 인근의 모든 마을을 뒤덮었다. 로드리게스 사격장 앞에선 주민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168일째를 맞고 있었다.
 

▲ 최명숙 야미2리 이장이 지난달 29일 포천시 로드리게스 사격장 앞에서 주민 안전을 보장하라는 피켓을 들고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29일 1인 시위를 나온 한 영송리 주민은 “6년 전 이사왔는데 처음 한달은 잠을 못 잤다”라며 “이제는 그저 포를 쏘는가보다 넘어가는데 아직도 헬기가 지나가면 너무 시끄럽다”고 쓰게 웃었다.

이길연 포천시 사격장 등 군 관련시설 범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가인권위, 국민안전처 등 관련기관엔 모두 민원을 제기했지만 안전대책이 없다”라며 “로드리게스 사격장이 생긴 지 63년이 지났다. 최근 범대위는 이제 안전대책이 아니라 사격장 폐쇄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헬기가 무장을 하면 사격장 내에서만 비행해야 하는데 민가쪽으로 비행한다. 비행고도도 400~500m로 올렸는데 안 지켜진다”라며 “있는 규정도 안 지키는데 현장에 정부 관계자 어느 누구도 나오지 않더라”라며 이를 악물었다. 범대위는 총선을 맞아 각 후보들에게 사격장 폐쇄를 약속하는 서약서를 받을 예정이다.

포천시는 지난해 군사격장 피해대책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피해조사를 연내 실시할 계획이다. 한 시 관계자는 “시가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중앙정부에 올려도 검토를 하겠다는 뻔한 답변만 나온다”라며 “정부 관련기관 모두가 현실을 알면서도 외교적 문제라 쉬쉬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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