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병아리 감별사①] 「촌닭」이 축복이다

  • 입력 2016.02.21 02:2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상락 소설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종(種)을 번식하려는 본능이 있다. 닭 또한 그러하다. 평소에 애써 낳은 알을 사람들에게 선뜻선뜻 내어주던 암탉이 어느 순간 자신이 낳은 알을 품어 안는다. 생각 없이 달걀을 가지러 갔다가 손등을 쪼인 뒤로, 나는 새끼를 만들겠다는 암탉의 본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아챘다.

그러나 제아무리 암탉이 완강하게 포란(抱卵)을 하고 있기로, 그 달걀에서 병아리가 탄생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권리는 닭이 아닌 사람에게 있다. 주인집에서 병아리를 칠 계획이 서 있을 경우 암탉의 품속에 여남은 개의 달걀을 더 넣어서 품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가차 없이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웃집 암탉이 병아리 열두 마리를 깠다. 엄니가 그 중 두 마리를 얻어 와서는 나와 동생에게 한 마리씩 나눠주었다. 나는 내 몫으로 분양받은 병아리를 소쿠리에 따로 넣고는 좁쌀 모이도 주고 때맞춰 물도 넣어주며 애지중지 키웠다.

“요놈이 커서 어미닭이 되면 계란을 낳을 것 아니라고. 그 계란을 한나도 안 묵고 모태 놨다가 전부다 삥아리를 까게 할 것이구먼. 열 마리, 백 마리…. 그놈들을 다시 키와서 폴아갖고 일단 도야지 한 마리를 딱, 산 다음에…”

동생 녀석은, 은행나무 이파리를 이불 삼을 만큼이나 쬐끄만 병아리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벌써 돼지를 키웠다가 소를 키웠다가 기와집을 짓는가 했더니 헐고 다시 통통배를 사는 등 야단이 났다. 나는 동생처럼 뜬구름 같은 상상은 하지 않았으나 그래도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석 달쯤이 지났다. 녀석들은 어느 사이 병아리 태를 벗고 중닭이 되었다. 그런데 머리에 자라나는 벼슬(볏)의 모습이 썩 수상쩍었다. 알고 보니 엄니가 얻어온 두 마리의 병아리가 공교롭게도 모두 수컷이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지었던 기와집 등속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 두 마리의 수평아리를 아주 멋진 장닭으로 키워냈다.

중학시절, 작은댁에 거주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2학년 때의 어느 날 빨간 ‘네꾸따이’를 맨 신사 한 사람이 이웃집에 나타났다. 미국에 이민 갔다가 잠시 다니러 온 것이라 했다. 와, 미국이라니? <마켄나의 황금>의 그레고리 펙이 살고 있는 나라! 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저녁, 그 이웃집 삼촌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미국에 갈 수 있으까라우?”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물었는데 그 삼촌은 여지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너도 미국 이민 가고 싶으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병아리 감별을 배워.”

알고 보니 그는 병아리 감별사로서 기술이민을 간 것이었다. 나는 뉴우요오크(당시 표기법)나 자유의 여신상이나 존 웨인이나 뭐 그런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그는 저녁 내내 병아리 얘기만 했다. 나도 하는 수 없이 병아리 쪽으로 화제를 맞췄다.

“병아리 감별사라는 거이 뭔 말이다요?”

“갓 태어난 병아리가 암놈인지 수놈인지를 가려내는 기술자를 말하는 거야. 나는 말이야, 부화장에 앉아서 한 시간에 천이백 마리의 병아리를 감별할 수 있다니까.”

삼촌이 어깨를 으쓱하였다. 한 시간에 천이백 마리면 병아리 한 마리의 성별을 단 3초 만에 판별해낸다는 얘기다. 우리는 석 달이 지나서야 겨우 알았는데….

“그란디, 암놈 수놈을 뭣 할라고 구별을 한다요?”

“수놈은 계란도 못 낳고 모이만 많이 먹으니까, 일찌감치 가려서 내버리는 것이지.”

세상에! 나는 마치 수컷인 내가 내쳐지는 것 같아서 옴찔, 소름이 돋았다. 그레고리 펙이고 뭣이고, 아무래도 미국 이민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