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양채류, 갈수록 전망 어두워

병해로 30%, 이상기후로 30% … 소득이 ‘숭텅숭텅’

  • 입력 2016.02.05 08:59
  • 수정 2016.02.05 09: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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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2일 제주시 한림읍에서 만난 양영철(52)씨는 손에서 전화통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뿌리혹병으로 콜라비의 생장이 멎어 출하할 수 없게 되자 그나마 굵은 것을 골라 가공용으로라도 공급할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뿌리혹병은 양배추·콜라비·브로콜리 등 십자화과 작물에 발생하는 전염성 병해로, 뿌리에 혹이 나고 썩어들어가 작물의 생장을 저해한다. 5~6년 전부터 빈발하기 시작해 양채류가 밀집한 한림·애월읍 농민들을 매년 괴롭히고 있다.

“재작년엔 뿌리혹병 때문에 밭 전체의 70%는 수확을 못 했어요. 작년엔 그래서 방제약도 치고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래도 30% 정도는 손실을 본 셈이죠.” 양씨 밭에 널려있는 들쭉날쭉한 크기의 콜라비와 비쩍 마른 브로콜리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 우리나라 월동채소 수급에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제주도 겨울철 채소가 이상고온과 잦은 비 등 기후변화로 인해 병해충이 발생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일 찾은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의 한 밭에 뿌리혹병이 발생한 콜라비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 한승호 기자

설상가상 지난해 첫 출하 당시엔 이상기후로 인해 지역 양채류 농가들이 더욱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비가 많이 오고 기온이 따뜻했던 탓에 정상보다 40일이나 앞선 10월경부터 첫 출하를 시작하면서 육지와 출하시기가 겹친 것이다.

“제주는 운송비도 비싸고 품질도 특별할 게 없어 육지랑 같이 출하하면 경쟁이 안돼요. 날씨가 추워야 콜라비에 당이 생기고 브로콜리도 단단해지는데, 따뜻하다 보니 품질도 많이 떨어졌구요.” 양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브로콜리 가격은 8kg당 9,000원대, 콜라비 가격은 15kg당 7,000원대였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30% 이상씩 떨어진 가격이다.

“그래도 작년까진 어떻게든 농사지어서 자식들 학교 보내는 건 걱정 없었는데, 올해는 정말 힘드네요.” 양씨는 취재 내내 ‘힘들다’는 말을 반복했다. 문제는 이같은 고충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양채류 농가를 따라다닐 것이라는 점이다. 뿌리혹병은 전염성 질병인 만큼 발생했던 밭에서 반복 발생하며 지역에 매년 유행하고 있으며, 이상기후 현상도 점점 그 빈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림·애월지역은 작목 편중으로 만성적인 양채류 공급과잉을 겪고 있다. 최근 이 지역에서도 양파·마늘 등 다른 작목을 시도하는 농가가 있지만, 이것이 심화되면 한림·애월-양채류, 한경-양파·마늘, 성산·구좌-무·당근 등 지역별로 분업화된 제주농업의 특성상 타작목의 연쇄폭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양채류 농가가 갈수록 힘들어요. 20년 농사지으면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진 저조차도 이렇게 어려운데, 어지간한 농가는 이제 농약값·비료값 갚기도 힘들 거에요.” 황폐한 밭을 바라보는 양씨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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