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우리도 ‘나이롱 뽕’을 쳤다
[그 시절 우리는] 우리도 ‘나이롱 뽕’을 쳤다
  • 이상락 소설가
  • 승인 2016.01.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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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락 소설가
밤밤밤바람은 추워도 / 우우우리들은 즐거워 /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 호호 밤을 구워 먹으며 / 먼먼 옛날 얘기 듣지요.

이런 노래가 있었다. 제목은 잘 모르겠다. 아마 2절은, 밤밤 겨울밤은 깊어도 / 우우우리들은 안 졸려 / 손쳐들고 그림자놀이 / 멍멍 바둑이도 나오고/ 깡충 옥토끼도 뛰지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겨울철이면 요즘도 생각나는 동요다. 이 노래에는 옛 시절 농촌마을 아이들이 어떻게 겨우살이를 했는지가 조금쯤 드러나 있다.

하지만 화롯가에 둘러앉아 밤을 구워 먹는 것도 어쩌다 한 번이고, 할머니의 옛날 얘기 보따리도 화수분이 아니어서 “옛날 옛날에…”에서 한참 멈칫거리다 막상 끌러놓고 보면 언젠가 듣던 이야기다. 할머니도 재개봉인 것을 아시는지라 서둘러 “…잘 묵고 살었드란다”로 마무리를 하신다. 작은 방으로 건너가서 동생하고 두 손을 치켜 올려서는, 등잔 앞에서 요리조리 그림자를 만들어 본다. 벽이나 창호지문에 바둑이가 어른거리고 토끼의 형상이 비친다 한들 별무재미다. 나는 그것들이 말짱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터득해버린, 5학년이었던 것이다. 겨울밤은 길고 5학년은 외롭다. 아니 고독하다,

그래서 초저녁, 책보 둘러메고 장작 두어 개비 챙겨들고 나섰다.

“엄니, 수남이 즈그 집에서 기숙하고 오께라우.”

기숙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저녁에 누군가의 작은방에 가서 동무들끼리 하룻밤을 지내고 오는 것을 ‘기숙한다’고 했는데, 아마 윗녘의 어느 기숙사쯤에서 굴러왔을 그 ‘기숙’이라는 말은 제법 고급해 뵈면서도, 입에 올리고 나면 어쩐지 또 좀 야릇하였다. 엄니는 장차 집안의 기둥이 될 장남이 책보를 둘러메고 나서는지라, 삶은 고구마도 챙겨주고 감춰두었던 엿가락도 내놓는다.

이미 동무들이 와 있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온 장작을 부려놓고, 작은방 아궁이에 불부터 지폈다. 방바닥이 ‘따땃’하게 달아올랐다.

“숙제고 뭣이고 일단 한 판 치드라고!”

수남이가 방 가운데에다 담요를 펴더니 서랍에서 화투를 꺼내왔다. 어른들이 가지고 노는 그런 화투가 아니었다. 아니, 진짜배기 화투를 확보하는 것은 5학년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할 줄 아는 ‘나이롱 뽕’은 ‘광’이니 ‘띠’니 ‘껍데기’니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전혀 없는, 1부터 12까지의 숫자 표시판만 있으면 되는 놀음(노름?)이었다. 우리는 이미 5학년이었으므로 ‘12×4’라는 화투의 구성 체계를 알아버렸다. 공책표지를 같은 크기로 잘라 48장을 만든 다음, 크레용으로 1부터 12까지 각각 넉 장씩 숫자를 써넣은 것이 우리가 갖춘 ‘화투 한 벌’이었다.

선(先)으로 뽑힌 방 주인 수남이가 조금 어설픈 손놀림으로 다섯 장씩을 돌렸다. 우리들의 겨울밤 오락이 시작된 것이다. 바닥에 포개놓은 화투 한 장을 집어 올린 다음, 그 여섯 장 중에서 한 장을 내려놓으며 해당 숫자를 소리 내어 말한다. 그 말을 받아서 “7 뽕에 9!” “6뽕에 8” 따위의 소리가 한창 시끄럽게 어우러질 무렵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수남이 어머니였다.

“느그들 시방 공부는 안하고 뭣 하고 있는 것이여?”

“우리 시방 공부…하고 있는디라우. 아, 그, 그랑깨 뭣이냐, 그 산수공부…”

5학년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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