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보다 더 행복한 직업이 어딨겠나”

경남 합천 황매산 자락 나무실마을 농부시인 서정홍씨

  • 입력 2016.01.15 14:48
  • 수정 2016.01.22 14:41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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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 농부시인 서정홍씨가 함께 일하는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이며 “노동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다. 어떻게 하는지 몸이 기억한다”며 “혼자 일할 때는 혼자 살살하면 되지만 같이 할 때는 손발을 맞춰 호흡이 맞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농촌에 사니까 너무 행복해서 도시에 있는 사람들한테 미안할 정도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이 설레어서 하루하루가 꿈만 같죠. 이 자유 속에서 산다는 게. 일어나는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 책 읽는 시간, 낮잠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이 모든 걸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농부잖아요.”

경납 합천 황매산 자락 나무실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시인 서정홍(59) 씨는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 11일 “농부보다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직업이 세상에 어딨겠나”라며 ‘농부예찬론’을 펼치는 서씨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비결을 확인했다.

서씨는 “시인이 없으면 살 수 있지만 농부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라며 “농부는 최고의 예술가”라고 칭했다. “땅에 씨앗을 심고 가꾸고 키워내는 것은 어느 예술작품 못지 않은 살아있는 예술”이라며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되묻는 그. ‘행복’은 결국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씨는 자신이 가르쳐온 고등학생들과 양파밭에 뿌릴 볏짚을 쓸어 담으며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다”고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들이 없으면 대통령도 필요 없고, 장관도, 운동장도, 학교도 아무 것도 필요 없잖아요. 농약을 안 쓰고 농사를 지을 필요가 뭐 있으며 환경을 지켜야 할 이유가 뭐겠습니까. 정치를 살려야 하는 이유도, 교육을 살려야 되는 것도 다 아이들 때문이지요.”

그가 1995 년 황매산 자락에 터를 잡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아지똥학교’를 만들어 아이들과 숲속에서 멧돼지 발자국과 고라니똥을 찾은 것도, 2014년 9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과 함께하는 담쟁이 인문학교’를 만들어 인권과 노동, 농업, 소통 등 다양한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온 것도 그래서다.

그와 함께 일하던 김민호(19)군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강아지똥학교’에서 처음 만났다”며 “기계를 쓰면 편할 텐데 며칠이 걸려도 손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고 기억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잠이 온다”고 한 그의 얘기가 허투루 한 얘기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골마을에 집을 짓고 공동체를 꾸리고 아이들을 만나며 억척스럽게 미래를 일궈온 그는 농사에서도 그 의지를 그대로 이어갔다. 농약과 화학비료, 비닐을 일체 쓰지 않는 생명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온 것이다. 그는 “지구를 살리는 마지막 희망이 가족소농” 이라며 “다양한 먹을거리를 자급자족 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예전엔 논농사도 지었지만 지금은 2천여평의 밭에서 녹두, 파, 수수, 콩, 배추 등 50여가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석유와 가스도 쓰지 않고 산에서 팬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뗀다. 왕겨와 재를 이용한 생태화장실도 만들었다. 서씨는 “모든 작물이 햇빛을 보고,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고 자라야 건강하다”며 생명농법의 중요성을 자연스레 강조하곤 밭이름을 설명했다. “아담하게 쌓아올린 돌담 옆 밭은 돌담밭이고, 개울가 옆 밭은 개울밭으로 이름을 붙였다”며 웃음 짓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의 순수함이 묻어났다.

그런 순수함으로 농사를 지으며 쓴 동시 ‘닳지 않는 손’ 은 2008년 제7회 ‘우리나라 좋은 동시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다. 서씨가 농부시인으로 알려진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지던 1980년대, 경남 창원의 공단 노동자였던 서씨는 노동자문학회를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0년 제1회 ‘마창노련문학상’과 1992년 제4회 ‘전태일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1992년 어느 날 서씨는 우연히 접한 기사를 계기로 농민운동으로 삶의 진로를 변경했다. 짜장면, 국수, 라면 거의 100%가 수입 밀가루를 쓰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우리 아이들 먹는 게 방부제와 농약이 섞인 수입밀가루인지도 몰랐구나란 생각에 아버지로서 너무도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직업을 바꿨죠. 가톨릭 농민회에 들어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일을 같이 하면서 그때부터 10년 동안 농민운동을 했죠.”

농민운동을 하던 그는 2005년 산골마을로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는 농민이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소비를 줄이는 것을 제안했다.

“소비를 줄이면 일을 적게 해도 돼요. 일이 많아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행복해질 시간이 없잖아요.”

그는 집집마다 빚내서 수천 만원의 트랙터를 사는 것보다 공동체를 통해 농기계를 공유해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소비를 줄이면 일도 줄고 여유가 생겨야 마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여기에 더해 공동체 등의 마을모임을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혼자 농약을 안치고 농사를 지면 힘들지만 같이 하면 쉬워져요. 함께 사는 얘기도 나누고 고민하고 결정하면 용기도 생기고 잘 참을 수도 있어요. 그 속에서 길을 찾으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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