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45회

  • 입력 2015.11.27 13:41
  • 수정 2015.11.27 13:43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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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곡마을 부녀회의 단체 관광은 금세 면내의 화제가 되었다. 당장 다녀온 부녀자들이 어찌나 오지게 재미가 있었는지 떠들고 다녔던 것이다. 하긴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을 터였다. 생전 처음 전세 낸 버스를 타고 먹고 마시며 라디오에서나 듣던 신명나는 노래를 온종일 꽝꽝 틀어대니 얼마나 즐거웠을 것인가. 집에서 해방되었다는 느낌 하나로도 부녀자들은 기쁨을 넘어 감격했던 것이다. 그 일로 면내의 다른 마을에도 마을 구판장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시곡마을 부녀회가 관광까지 가게 된 원동력이 구판장 사업이었음을 알고 서둘러 작게라도 가게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마을에서는 조금 큰 집의 행랑채를 빌어서 시작했고 아니면 주민들이 손을 모아 아예 작은 건물을 짓기도 했다. 물론 얼마 안 가 구판장의 폐해도 생겨났다. 무엇보다 구판장에서는 막걸리와 소주를 팔았고 급속하게 술에 중독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양조장에서 떼어다가 됫박 술로 파는 막걸리는 이익이 상당했다. 가끔씩 집에서 담가 먹던 사람들이 언제나 주전자만 들고 가면 살 수 있는 구판장이 생기자 한 번 마실 것을 두 번 마시게 되고 사흘거리로 마실 것을 날이면 날마다 마시게 되었다. 게다가 구판장은 처음부터 외상 거래를 했기 때문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처럼 노상 구판장에 죽치며 술을 마시는 자들이 늘어만 갔다. 겨울에는 구판장이 노름방으로 변해 집안에 분란이 일어나는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그런저런 폐단에도 불구하고 구판장 사업은 대개의 마을에서 성공적이었다.

▲ 일러스트 박홍규

“당신 보건소에 며칠 다녀볼라나?”

마을에서 똘똘한 젊은 여자들로 골라서 추천해달라는 면장의 부탁을 받고 아무리 살펴봐도 아내만한 사람이 없었다.

“보건소라니, 왜요?”

젖먹이인 셋째를 안고 있다가 아내가 되물었다.

“그게, 지금 국가에서 제일로 신경을 쓰면서 추진하는 게 가족계획이 아닌가?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지금 이게 난리도 아녀. 대통령부터 시골 면장까지 온통 여기에 매달려 있다니께.”

“지두 알어유. 당신 피우는 담배갑에두 써 있잖유. 아들 딸 구별 말구 둘만 낳아서 잘 키우자구.”

그랬다. 라디오에서는 날마다 산아제한 캠페인이 벌어졌고 곳곳에 구호가 붙었다. 남자가 불임수술을 받으면 돈까지 얹어주었다.

“그런데 말여. 그렇게 정부에서 얘기를 해도 아직 시골에서는 먹히질 않는다네. 보건소 직원들이 마을마다 다니면서 교육을 하는데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여. 그래서 지역 주민들 중에 선발을 해서 가족계획 요원을 양성하기로 했다네. 아무래도 같은 동네 사람이 말하면 말발도 더 잘 먹힐 테고.”

“근데 보건소엔 왜 가라고 하는대유?”

“뭘 알아야 교육을 할 거 아녀? 며칠 교육받고 우리 면내 마을에 다니면서 교육도 하고 피임기구도 나누어 주고 그런 일을 하라는 거여.”

사실 온 나라가 산아제한 문제로 법석이었다. 아이를 적게 낳지 않으면 국가가 망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특히 농촌이 심각했다. 보통 대여섯 명씩 아이를 낳는 집이 많았다. 무지몽매한 시골 사람들 때문에 큰일이 날 거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산아제한 교육이란 게 결국 피임과 불임 교육으로 이어지는데 남자들이 부녀자들을 상대로 말을 꺼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성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는 농촌 부녀자들에게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이야기를 남자가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시골에서는 완고한 노인들 때문에 불임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정마다 방문하여 일대일로 교육을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아내가 갑자기 기족계획요원으로 발탁된 연유였다. 조금 미심쩍은 구석도 없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열변을 뿜던 어느 인사가 인구가 줄어야 일인당 국민소득이 올라간다는 말을 할 때는 무슨 뜻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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