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향한 물대포…‘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 입력 2015.11.15 15:56
  • 수정 2015.11.15 16:17
  • 기자명 홍기원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지난 14일 쌀값을 보장해달라는 농민들의 절절한 요구에 박근혜정권은 차벽과 물대포로 응수했다. 물대포를 직사로 맞은 농민은 긴 수술 끝에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경찰의 폭력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로 규정하고 박근혜정권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5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경찰의 평화행진 봉쇄와 폭력진압을 규탄했다.

투쟁본부는 15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14일 민중총궐기 대회 폭력 진압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강신명 경찰청장의 파면을 촉구했다. 투쟁본부는 기자회견문에서 “백남기(임마누엘) 농민은 직사 물대포를 가슴 부위에 맞고 쓰러졌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이어 “경찰의 반인권적 폭력진압이 백남기 농민을 사경으로 내몬 주범이다”라며 “민중의 총궐기는 이제 시작이다. 오는 12월 5일 2차 총궐기를 개최해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어떤지 보여주겠다”고 경고했다.

“백남기 농민, 2~3일 지나야 호전 여부 파악”

전날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쓰러진 백남기씨(전남 보성군, 69)는 가톨릭농민회 회원으로 지역농민들과 함께 상경해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여하던 중 18시 56분경 물대포를 얼굴 정면에 맞고 뒤로 쓰러졌다. 경찰은 쓰러진 백씨에게 20초간 계속 물대포를 분사했다. 주위 집회 참가자들과 취재기자들의 증언과 사건 당시 사진과 동영상에 따르면 백씨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불명인 채 구조됐다. 구급차는 19:08경 현장에 도착했고 곧장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 도착 당시 백씨의 상태는 외상성 경막하출혈(외상에 의한 뇌출혈)이었으며 23시경 응급수술을 진행했다.

직접 사건 상황을 촬영한 한 기자는 “백씨의 코 오른쪽에서 피가 나와 뺨을 타고 흘렀다. 뇌출혈로 보였으며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역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재식 민주노총 조합원은 “소강상태에서 백남기 선생은 거리에 잠시 서 있었는데 물대포를 맞아 넘어졌다. 넘어진 뒤에도 물대포를 계속 쐈다. 물대포가 다른 방향으로 향해 다가가니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인공호흡까지 하고 3~40미터를 안아 옮겼다”면서 “아직 사경을 헤멘다니 착잡하다”고 안타까워했다.

▲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5일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경찰의 평화행진 봉쇄와 폭력진압을 규탄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백씨는 보성군 옹치면에서 유기농업과 밀 농사를 지은 농민이다. 1989년 가틀릭농민회 전남연합회 회장을 맡았으며 가톨릭농민회 전국부회장과 우리밀살리기 전국회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은 “백남기 동지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성실히 산 농민이다”라며 “지을만한 농사가 없어 기대를 갖고 서울에 왔는데 옛말에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마라’는 말이 있다”고 분노했다.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백씨는 지난밤 4시간여에 걸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있다”며 “담당의사 얘기론 수술은 최선을 다했으며 2~3일 지나야 호전될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폭력진압, “적군 대하는 모습이었다” 경악

이날 경찰의 폭력진압은 이뿐만이 아니다. 랑이 인권단체연석회의 인권침해감시단 활동가는 “경찰은 광범위하게 차벽을 설치했는데 안국동, 인사동 주변에도 설치했다”면서 “경찰은 차벽 위에서 사람이 아래에 있는데도 장대에 톱을 매달아 휘둘렀다”고 증언했다. 그는 “집회 내내 최루액이 섞인 살수를 했으며 특정인을 지목한 살수도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부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찰 진압으로 골절, 홍채출혈 등 현장에 대기한 의료진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상자가 많았다”고 탄식했다. 전 정책부장은 “물대포 살수에 경찰이 사용하는 파바(혹은 캡사이신)를 섞어 살포하면 굉장히 위험하다”며 “의료인 단체들은 여러차례 물대포 난사와 집중 살포의 위험함을 경고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물질안전자료(MSDS)는 한각경찰이 사용하는 파바와 캡사이신을 인체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박근혜 정부는 불특정 다수 시민들을 대상으로 위험물질을 사용한 인체실험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최루액과 캡사이신 사용의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 진료진이 파악한 민중총궐기 집회 참가자들의 부상 현황은 현재 백씨를 포함해 15명 남짓으로 집계됐지만 물대포의 직사 및 난사로 인한 부상자가 너무 많이 수천명의 부상자가 나온 걸로 추정했다.

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은 “(백씨가 쓰러진 동영상을 보니)이한열 열사가 떠올랐으며 국민을 적으로 규정하는 경찰 폭력의 악랄함을 목격했다”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 사무총장은 “살수차에 최루액을 넣어 분사하는 경찰규정은 없다”며 “법률 위임없이 내부지침으로 살포기준을 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무총장은 “내부규정상 경고방송과 경고살수 뒤 살수를 해야하는데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전혀 없었다. 물대포 직사는 지극히 위해적인 상황에 해야한다. 또, 직사도 가슴 이하 부위를 거리에 따라 물살세기의 차등을 둬서 살수해야 한다”고 경찰의 불법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러면서 “최초 살수는 업무상 상해에 해당하지만 20초 이상 살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에 해당될 수 있다”며 “피해자 가족들과 협의해 형사고발, 국가배상, 헌법소원 등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전날 경찰의 폭력진압을 “적군이나 적대적 세력을 대하는 모습이었다”고 떠올리며 “현장책임자를 구속하고 경찰청장 해임, 박근혜 대통령 사과가 필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쟁본부 대변인을 맡고 있는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앞으로의 대응은 논의를 해야 한다. 다만 이후 더 큰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쟁본부는 이 날 17시엔 서울대병원 앞에서 경찰 살인 폭력 탄압 규탄 및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촛불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 김정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총장이 15일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