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인도 농민들과 가바춤을 추다

  • 입력 2015.09.11 14:22
  • 수정 2015.09.11 14:24
  • 기자명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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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인도 구자라트주 깊은 농촌마을에 세계 농민대표자들이 모였다. 식량주권을 위한 국제회의였다. 회의는 IPC(International Planning Committee for Food Sovereignty) 총회로, 전농은 비아 캄페시나(La Via Campasina)의 구성원으로 참석했다. IPC를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같이 농민만이 아닌 더 넓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IPC는 세계식량기구(FAO)와의 협력 사업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이번 회의에서도 이 내용이 중심이었다. 회의 마지막 날에는 FAO의 담당관이 나와 우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적어도 국제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와 FAO 사이에 많은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딴판으로 굴러가고 있는 실정이라 국제적 흐름과 크게 대비되었다.

심지어 FAO 한국지부는 FAO의 이름을 불법으로 사용하는 유사단체임에도 농식품부는 이 단체를 앞세워 쌀개방을 추진하는 등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어, 농민들은 FAO를 또 하나의 농민통치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회의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WTO 대응에 관한 것이었다. 비록 적은 시간이 배당되었지만 모두가 WTO 반대투쟁에 뜨겁게 호응했다.

특히 이번 12월 중순 10차 WTO각료회의가 열리는 케냐 나이로비에 집결하기로 합의했고, 케냐 농민단체 대표는 WTO투쟁에 국민들의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는 결의를 밝히면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다.

많은 분들이 한국의 이경해 열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발 나아가 그들은 이번 나이로비 투쟁에서 이경해 열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WTO가 농민을 죽인다’며 가슴에 피로 새긴 글씨가 세계 농민의 심장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나이로비 투쟁은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10여년 넘게 지루하게 진행된 DDA협상의 종말을 선언하고 출범이후 20년 동안 1대 99 사회를 구축한 악의 축인 WTO에 대한 세계적 장례가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5일간의 회의는 고된 노동보다 더 했다. 특히 30도 넘는 몬순더위에 에어콘도, 냉장고도 없이 오직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에 의존하면서 농민들은 너무나 성숙하고 자유롭게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체가 감동이고 힘이었다.

그리고 더욱 큰 감동은 구자라트주 농민들이었다.

짧은 시간에 짧은 대화를 가졌지만 늦은 저녁 2시간 가량 함께 춤을 추는 것으로 모두가 일치되었다.

‘가바’ 춤이라는 것인데 우리나라 강강수월래처럼 원모양으로 돌며 추는 것으로 발동작과 가락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어 인도 농민들과 세계 농민대표자들은 쉽게 혼연일치가 되었다. 여기에 인도 농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발동작과 손동작이 현란해지고 남자들은 힘이 쭉쭉 뻗치는 춤사위를 구사하면서 모두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될 정도였다.

공동체문화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아름답게 만들어 그들은 우리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관대하고 그리고 농업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 이번 회의에 모인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가바춤을 파괴하여 나이트클럽문화로 일색화하고, 식량주권을 파괴하여 곡물자본가 세상을 만드는 WTO에 맞선 우리의 마음이 가바춤을 추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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