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심는 여성농민들의 붉은 손길

사진이야기 農寫 올 가을 김장무 파종 시작

  • 입력 2015.08.16 21:04
  • 수정 2015.08.16 21:11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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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붉은 대지 위에 하나 둘 여성농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꽃무늬 생생한 낡은 일바지와 두건을 쓴 농민들의 손엔 주황 바구니가 하나씩 들려 있다. 바구니엔 이날 심어야 할 무 씨앗이 한 가득이다. 씨앗 또한 대지의 색 만큼이나 붉다.

고랑 사이로 촘촘히 늘어선 농민들이 하나같이 허리를 숙인다. 손에 쥔 씨앗을 미리 파 놓은 구덩이에 놓고 흙을 덮는다. 너무 깊숙이도 너무 얕게도 아닌 오랜 연륜 속 몸으로 체화한 그 곳에 씨앗을 놓는다. 싹 틔우기에 최적인 위치다.

허나, 허리를 구부릴 수밖에 없는 노동 속에 일의 진행이 더디다. 씨앗을 심으며 몇 발자국 내딛다보면 어느 새 허리를 펴고 한숨을 돌리는 농민들이 부지기수다. 한 손을 허리에 대고 한껏 가슴을 펴며 깊은 숨을 내뱉는다. 그나마 잠시, 시선이 가닿는 곳에 남은 고랑의 면적이 들어오자 다시 허리를 굽히는 노동이 시작된다.

지난 11일 올 가을 김장무로 쓰일 무 파종 작업이 한창이다. 씨앗을 심고 순을 골라내고 이윽고 수확하는 모든 노동의 끝에 여성농민들의 손길이 있다. 어머니라 일컫기엔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들이 진하게 묻어나는 70대 할머니들이 붉은 대지 위에 서서 씨앗을 심고 또 심는다.

결국, 한 할머니의 지청구가 들녘 위에 퍼진다. “호랑이가 물어갈 놈의 시간이 이것밖에 안 됐어.” 이른 새벽부터 이어진 노동으로 몸이 느끼는 고통이 상당한데도 시간이 여전히 9시 언저리를 맴돌자 터져 나온 할머니의 오랜 수사다. 고된 노동 속 뜻밖의 ‘추임새’에 일손을 놓은 할머니들이 덩달아 웃는다.

그러한 ‘호랑이가 물어갈 놈의 시간’을 칠십 평생 버텨 온 농민들에게 비구름 잔뜩 머금은 하늘은 기분 좋은 선물일 터, 잔잔히 살랑거리는 바람이 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한 고랑을 다 일군 여성농민들의 손을 본다. 대지가 붉어서일까. 씨앗이 붉어서일까. 무시(무) 심는 여성농민들의 손이 유난히 더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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