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키만한 담배밭에 스며들다

사진이야기 農·寫 수확·건조·조리까지 담배농가의 하루

  • 입력 2015.07.10 13:17
  • 수정 2015.07.12 19:55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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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한 담뱃잎을 운반하기 좋게 말은 포대는 무게가 평균 20kg을 넘는다. 노승우씨가 담뱃잎을 어깨에 메고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 담뱃잎을 따자마자 옆구리에 끼운다. 우비를 벗고 수확에 나서자 옷과 팔토씨가 금세 담배 진액과 이슬에 물들어버렸다.
   
▲ 담뱃잎을 고정시켜 건조장에 거는 일도 수월치 않다. 차곡차곡 쌓아 고정시킨 담뱃잎을 농민 3명이서 운반하고 있다.
   
▲ 건조한 담뱃잎을 선별하는 작업을 농민들은 "담배 조리한다"고 말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담배는 사람 키만큼이나 훌쩍 자라 있었다. 생육 순서에 따라 ‘하엽, 중엽, 본엽, 상엽’으로 나뉘는 담배의 하엽을 따기 위해 허리를 숙이면 사람은 널찍하고 무성한 담뱃잎에 가려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담뱃잎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사람이 있고없음을 판단할 뿐이었다.

수확 작업은 새벽 5시 경부터 시작됐다. 먼동이 터올 무렵, 농민들은 노란 우비를 챙겨 입고 담배밭으로 향했다. 밤새 맺힌 이슬과 담배 특유의 진액이 뒤범벅 돼 우비 없이는 옷을 버리기 일쑤였다. 노승우(57,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화원길)씨 밭일에 김상규(63)·장경자(60)씨 부부와 최순화(60)씨가 일손을 보탰다. 마을에서 이제 몇 남지 않은, 전문적으로 담뱃잎을 따는 숙련자들이었다.

농민들이 밭고랑 사이로 흩어졌다. ‘딱 따닥 딱’ 담뱃잎을 따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한 손으로 담뱃잎을 따자마자 반대편 옆구리에 끼워 모았다. 그렇게 한 아름 가량을 수확하면 담뱃잎을 운반하기 좋도록 만든 포대로 돌돌 감아 묶었다. 포대 운반은 노씨의 몫이었다. 평균 20 ~ 25kg 정도 되는 포대를 어깨에 들쳐 멜 때는 절로 기합이 들어갔다. 그의 어깨 위로 담배 키만큼이나 담뱃잎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농로에 세워둔 트럭까지 수시로 오가기를 몇 번, 거친 숨을 토해낼 즈음 노씨가 트럭을 몰고 밭 인근의 잎담배 건조장으로 담배를 운반했다. 건조장 앞에서는 담뱃잎을 건조시키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김문기(69), 이옥순(66), 김학준(61)씨는 막 수확해 온 담뱃잎을 흩어지지 않도록 철골구조물에 고정시켜 창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상당한 무게 탓에 2명 때로는 3명이 모두 담배를 들어 옮겨야 했다. 이날 수확한 물량 모두가 이들 손을 거쳐 건조장 안에 쌓여 갔다.

건조 작업은 일주일동안 지속된다. 기름을 때 창고 내 온도를 40도에서 60도 수준으로 유지해야 양질의 담뱃잎으로 건조시킬 수 있다. 이 때 들어가는 기름의 양만해도 열 말이나 된다.

한편, 앞서 수확해 말려 놓은 담뱃잎을 등급에 맞게 선별하는 작업도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농민들은 이를 “담배 조리한다”고 말했다. 정해순(72), 장영숙(60)씨는 건조 후 샛노랗게 변한 담뱃잎을 크기와 색깔로 판별해 1, 2, 3등급으로 세분화 시켰다.

만져보니 바삭거릴 것만 같던 담뱃잎은 의외로 촉촉함이 살아있었다. 정씨는 “첫 수확분(하엽)이라서 촉촉함이 덜하다”고 말했다. 노씨는 “담배는 중엽과 본엽에서 1등품이 많이 나온다”며 “지금부터 수확하는 게 진짜”라고 귀띔했다.

동 틀 무렵부터 시작된 담배 수확은 시침바늘이 11시를 가리키고 나서야 끝났다. 이날 수확한 담배 양만 500 ~ 550kg 정도. “눈 비빌 새도 없이 밭에 엎어지는 거라 아침 먹을 겨를도 없다”는 농민들의 말마따나 이날 제대로 된 식사는 아침 겸 점심으로 주문한 아욱국 백반이었다. 서로의 고생을 위로하며 옹기종기 모여 수저를 들자 기다렸다는 듯 하우스 비닐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담배 수확에 나섰던 최씨가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하늘이 도와줘서 ‘거지’가 안됐어. 비도 때마침 잘도 오누만.” 8월 중순까지 지속되는 수확의 나날 중 하루가, 오늘 그렇게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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