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분야 피해는 보다 구체적이다

농축산물 추가개방·비관세장벽 철폐 불가피

  • 입력 2015.05.29 16:43
  • 수정 2015.11.08 00:0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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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TPP로 인한 불명확한 이익효과에 비해 농업분야에 우려되는 피해는 좀더 구체적이다. 쌀을 포함한 농축산물의 대대적인 추가개방과 비관세장벽 철폐로 인한 수입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창립회원국이 아닌 후발가입국이라는 입지는 우리 정부의 치명적 약점이다. TPP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12개 참여국들과 각각 양자협상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비록 12개국 중 1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하고 있지만 농축산물 추가개방 압박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농축산물 개방은 낙농품, 감자, 대두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이 한-미 FTA를 최고 수준으로 하고 있다. 나머지 11개국이 최소한 한-미 FTA 수준의 개방을 요구하고, 미국이 낙농품 등의 품목에 추가 개방을 요구하리란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바다.

어명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TPP 협상과 농업부문의 영향과 시사점>에서 미국이 낙농품, 감자, 오렌지 등에, 축산 강국인 영연방 3개국은 쇠고기 등 축산물에 대해 추가개방을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칠레의 경우 DDA 이후 재협상키로 한 391개 품목을 도마에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모두가 우리에겐 민감한 품목으로, 특히 칠레 391개 품목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긍정적 입장 표명과 맞물려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어 위원은 “우리가 이 모두를 양보할 일은 없겠지만 상당수 희생은 따를 것으로 본다. TPP만 아니라면 양자간 협상을 통해 형식적인 수준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데, TPP는 다자간에 예외 없는 개방을 전제로 하고 있어 그렇게 하기 곤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TPP의 불명확한 이익효과에 비해 농업분야 피해는 보다 명확하다. 특히 주곡인 쌀은 TPP 협상에서 관세율 인하 혹은 MMA 증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승호 기자
가장 중요한 건 주곡인 쌀이다. 정부가 쌀 전면개방을 하면서 반드시 지키겠다 한 관세율 513%가 TPP 협상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설혹 관세율을 지킨다 해도 MMA 물량 확대가 불가피한데, 이 경우 쌀 전면개방의 배경이 MMA 물량 과중이었던 만큼 심각한 시장 피해와 더불어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쌀 협상과 TPP 협상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TPP에 가입하겠다고 뛰어든 순간 상대에게 칼자루를 내준 셈이다. 현실적으로 쌀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입품목과 물량을 늘리는 데는 낮아지는 비관세장벽도 큰 역할을 한다. 비관세장벽 철폐는 TPP가 갖는 FTA와의 차별적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 TPP에서 구상하고 있는 분쟁협의장치(CM)를 들 수 있다. 현 WTO 체제에서 건당 수 년씩을 소요하는 통상마찰 중재를 TPP 내에서 신속하게 해결하겠다는 것.

이것이 확정될 경우 우리나라처럼 비교적 엄격한 검역기준으로 수입농산물을 통제하던 국가들은 또 한 번 큰 폭의 개방을 치르게 된다. 광우병 쇠고기와 AI 닭고기, 잔류농약기준을 초과한 농작물과 병해충 위험평가에 탈락된 과일들이 상대국의 요구와 CM의 중재에 따라 수입될 수 있다.

TPP에서 요구하는 국영기업의 경쟁중립성 강화도 아직 실체가 없지만 안심할 수 없다. 어명근 위원은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 수입관리방식에 국영무역, 수입권공매, 실수요자배정 등이 있는데, 수입권공매와 같이 시장지향적 성격의 영역이 확대된다면 수급안정 측면의 공적 기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만약의 경우를 우려했다.

복수의 국가가 참가하는 TPP는 그 성격상 한꺼번에 방대한 수준의 시장개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양자간 FTA의 국내 피해보전대책조차 불완전한 상황에서 농민들이 또 다시 커다란 희생과 부담을 떠안아야 할 사안이다. 장경호 부소장은 “농업분야가 이렇게까지 다 희생하고 소비자의 먹거리 안전을 양보하면서까지 TPP에 가입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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