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폭락은 생산량 과잉 탓?

FTA 체결로 인한 수입농산물 증가가 원인 … 정부가 발 벗고 나서 수입하기도

  • 입력 2015.05.29 15:21
  • 수정 2015.05.29 15:37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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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개방농정 이후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수입농산물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가면서, 농산물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은 그 때 그 때의 수급에 따라 등락을 반복한다. 국내 생산량이 수요보다 많아지면 농산물 가격은 하락한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생산량 과잉 여부에 상관없이 수입농산물이 시장 가격을 하락시키고 있다. 더구나 정부의 정책은 국내 농산물의 안정적인 수급보다, 소비자 물가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것 같으면 정부는 수입 물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킨다. 가격이 폭락하면 적자고, 폭등하면 끌어내리니 농민들은 농사를 “도박하는 심정”으로 한다고 토로한다. 결국 수입농산물의 증가는 주산지 농민들의 생산기반을 상실케 하고, 식량자급률 하락, 수입농산물 의존으로 연결돼 국민의 먹거리 안전성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는 수입농산물은 국내 농산물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사진은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점포에 쌓여있는 수입과일. 홍기원 기자

2014년은 거의 모든 농산물의 가격이 폭락한 해였다. 양파·마늘·고추·배추·배·포도 등 어느 품목 할 것 없이 도미노처럼 가격이 하락했다. 특히 양파나 배추처럼 심각했던 품목은 2013년에 비해 가격이 절반 이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수확해봐야 오히려 손해니, 밭을 갈아엎어 버리는 상황도 속출했다.

농식품부가 발표한 농산물 가격 하락 주원인은 작황 호조로 인한 생산량 증가와 소비 감소다. 실제 지난해 태풍 등의 자연재해가 없어 대부분의 농산물 생산량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무분별한 FTA 체결로 인한 수입농산물 증가와 물가안정 명목으로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을 증량시키는 정부의 수급 정책이다. TRQ는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 협상 합의안에 따라 일정물량만 저율관세로 수입이 보장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국내시장의 영향을 최소화 하는 것이 그 목적이지만 현재 TRQ 제도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물가안정이 최우선”
TRQ 악용한 무분별 수입

정부는 지난 2011년 고추가격이 상승하자 2010년 수입량의 약 두 배인 1만4,092톤을 TRQ 물량으로 수입해 시장에 방출했다. 뿐만 아니라 고추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2012년에는 8,710톤을 수입했다. 정부수입량, 민간수입량, 국내생산량에 이르기까지 국내엔 고추가 넘쳐났고, 판매되지 못한 고추는 고스란히 재고로 남았다. 결국 공급 과잉으로 고추가격은 600g에 5,500~6,000원으로 반 토막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3년, 고추 TRQ 물량 6,185톤을 추진했다.

양파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 2012년 이상기후로 국내 양파 생산량이 감소하자 정부는 바로 수입양파에 긴급할당관세 10%를 적용하고, 2013년 상반기에는 TRQ 물량을 증량했다. 여기에 민간수입량까지 더해진 2013년 양파 수입량은 평년대비 75.4% 증가한 10만8,000톤에 달했다. 그리고 지난해, 양파 가격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생산비를 건진 농가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이 여파로 올해 양파 재배면적이 줄어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자 정부는 저장양파를 조생양파 수확기에 방출해 가격 상승을 억제하고, TRQ 물량 도입까지 고려중이다.

무분별 FTA 체결 … 단기간 열대과일 급증
국내산 과일 3년 만에 최저 가격 찍어

무차별 FTA 체결로 수입과일 물량과 종류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망고나 자몽 등 열대과일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대형마트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열대과일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형마트 명절 선물용으로 수입과일세트까지 등장했다.

▲ 2012~2014년 열대과일 수입량 변화

지난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산 체리 관세 24%가 철폐되면서 체리 수입량은 2011년 4,982톤에서 2012년 9,454톤으로 급증했다. 그 다음해인 2013년, 체리 수입량은 최초로 1만톤을 넘어섰으며, 지난해엔 1만3,359톤이 수입됐다.

또 다른 한-미 FTA 수혜 품목은 오렌지다. 3~8월 오렌지에 적용되는 계절관세가 2018년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 적용되는 계절관세는 15%로, 매년 5%씩 인하돼 2018년에는 무관세로 수입이 가능해진다.

한-칠레 FTA 10년째인 지난해, 칠레산 포도에 붙었던 45%의 관세도 철폐됐다. 지난 한 해 수입된 신선 포도는 5만9,260톤으로, 앞으로 포도 수입은 더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

자몽과 망고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가 늘어 최근 3년 사이에 자몽 수입량은 약 2배, 망고는 약 4배 증가했다.

국내 농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관세가 FTA로 인해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역으로 수입상 입장에선 수입할 수 있는 과일 종류가 많아지는 셈이다. 올해 초 미국 서부지역 항만노조 태업 사태가 길어져 오렌지 수입이 여의치 않자 수입상들은 수입포도로 목표를 전환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수입과일이 들어오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반면 대체과일의 증가로 지난해 국내 주요 과일은 3년 만에 최저 가격을 찍었다.

작년 9월 추석 이후 거봉 2kg 상품은 9,000원대, 신고 배는 2만원대로 폭락했다. 또 최근 감귤은 평년의 절반 값으로 떨어졌다. 3~4월 오렌지와 포도 수입이 집중되기 때문에 가격 하락은 더 두드러진다. 지난해 하락한 과일 값 대부분은 아직 평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입과일 물량이 10% 증가할 때 국내과일 가격은 2%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속되는 FTA·TPP 체결 시도는 국내과일의 설 자리를 점차 밀어내고, 가격 폭락 사태는 이전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작목 선택은 도박 … 주산지 ‘휘청

수입농산물로 인해 시장 가격이 교란되면서 주산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일정 가격 이상 수입이 보장된다는 법이 없으니 해당 지역의 주력 품목임에도 농사짓기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충남 예산에서 농사를 짓는 조흥환씨는 “보통 100m 하우스 한 동이 밭떼기로 250만원에 거래되는데, 지난해는 150만원에 계약했다”며 “그런데 상인이 인건비 등을 고려해보고 타산이 안 맞으니까 배추를 수확해가지 않았다. 배추를 수확해야 수박이나 토마토 등 후작을 하는데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배추가 자연적으로 썩게 그냥 놔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일이 반복될까봐 배추를 심지 못했다”고 한숨지었다. 지금 조씨는 하우스 25동을 그대로 비워둔 상태다. 비단 조씨만이 아니라 올해 예산에서 시설봄배추 재배를 포기한 농가가 상당수다.

또 지난 2013년 마늘 가격이 폭락하자 적지 않은 수의 마늘 재배 농가가 양파로 작목전환을 했고, 이는 지난해 유례없는 양파 가격 폭락으로 이어졌다.

결국 수입농산물 증가, 가격 폭락, 작목 전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기반까지 무너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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