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정부는 정부대로, 농협은 농협대로

  • 입력 2015.05.23 14:47
  • 수정 2015.05.23 14:55
  • 기자명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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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

정부는 밥쌀용 쌀 수입으로 농민의 억장을 무너뜨리고, 농협 하나로마트는 수입과일을 판매하여 지탄을 받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농협은 농협대로 농민들의 농사의지를 꺾고 있다. 농민들에게 손해를 주고 있다. 쌀은 수요의 탄력성이 비탄력적이어서 적은 물량을 수입해도 가격 하락폭은 크게 나타난다.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7만7,000톤을 시장 격리하는 마당에, 의무적으로 수입할 필요도 없는 밥쌀용 쌀을 들여온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웃을 일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차마 밝힐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정부는 수입 밥쌀용 쌀에 대한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지만, 이 말에 설득될 사람은 없다. 다종다양한 소비자의 욕구와 경제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수요가 없는 상품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먹는 한 그릇 밥의 쌀값이 300원도 채 되지 않는, 자판기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쌀값을 지지해주는 것이 정부의 도리이다. 개방화의 신호탄인 UR협상 때부터 시작해 WTO, FTA 등을 거치면서 줄기차게 쌀을 지키자고 발버둥을 치며 부르짖은 농민들이 안중에도 없는 농정이 이것뿐이겠는가? 최근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입에 올인하고 있는 모양새에 농업은 주된 고려대상도 아니다.

경남지역의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오렌지, 바나나, 포도, 파인애플 등 수입과일을 판매하고 있어 문제다.

언젠가 농협의 수입농산물 판매에 대해 다문화가족의 수요 때문이라고 변명한 적이 있다. 이들도 수요 탓이다. 다문화가족들이 왜 힘없고 죄 없는 다문화가족 핑계를 대냐고 항변하는 경우를 보았다. 과일은 다른 과일과 대체효과가 크다. 수입과일의 소비 증가는 국산과일의 소비 감소를 가져온다. 농사지어 먹을 것이 없다는 농민들이 과일이나 과채류의 생산을 늘린 나머지, 과잉 생산되고 있는 품목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 마당에 수입과일을 판매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공급과잉을 더욱 부채질하는 격이다.

농협이 농민조합원의 조직이라는 케케묵은 말은 차치하고라도, 농협의 마케팅 전략 측면에서 수입농산물의 판매는 제 발등을 찍는 일이다. 농협마트가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현실에서 무엇인가 차별화전략이 필요하다. 농협은 마케팅 차별화전략으로 국내산만을 전적으로 판매하는 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농협의 이미지를 국내산 농산물만을 판매하는 마트로 만들어감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국내산 쌀로 제조한 막걸리, 국내산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고추장이나 김치류, 국내산 콩으로 만든 된장 등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국내산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사려면 농협마트로 가라는 슬로건으로 차별화하는 방법이다.

또 소비자에게 착한 소비를 권하여 농협마트가 농민의 생존과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착한 마트라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과잉 생산된 품목에 대해 소비자가 제값을 주고 사주어 농민의 시름을 덜어주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농협에게 이러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정부나 농협은 사람으로서 농민을 보고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20년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하는 쌀값에도 매년 반복해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을 보자는 것이다. 개방화시대에 수입농산물 품목을 피해 대체작목을 찾는 농민의 편에 서서 농업을 보자는 것이다. 농민도 사람이고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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