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가정의 달 5월이 싫어

  • 입력 2015.05.02 09:36
  • 수정 2015.05.02 09:37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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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5월입니다. 연한 잎들이 돋아나서 연초록산과 들이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이 계절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가정의 달’이 있습니다. 도시의 그것과 농촌의 가정의 달. 도시의 5월과 농촌의 5월은 사뭇 그 풍경이 다릅니다. 도시의 5월은 온갖 행사가 많아 나들이를 하며 즐기지만, 농촌의 5월은 이른바 파종의 시기인지라 때맞춰 파종하고 정식하고 모를 심느라 그야말로 바쁘기만 합니다. 그 바쁜 철에 어버이날이 겹쳐있으니 애가 탈일이지요.

어버이날에는 외지에 나간 자식들도 고향을 방문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막걸리 값이라도 드리며 효도의 마음을 표합니다. 도시에서 온 동서들이나 일가친척들이 기분 좋으라고 한 마디씩 인사를 합니다.

“요새는 도시보다 농촌이 더 살기가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싱싱한 먹을거리에, 공기 좋고…, 촌사람들은 씀씀이도 좋더라.”

이 말에 그냥 마음이 상합니다. 그렇게 좋으면 당신들도 농촌에 살지 왜 병원 가깝고, 싼 물건 지천으로 파는 마트 가깝고, 애들 공부시키기 좋은 도시에서 사냐고? 씀씀이가 좋다고? 다른 데는 아무 것도 못 쓰고 어쩌다 친구들 만나 허세도 아닌 것이 사람구실 해 보려고 한 턱 쓰는 것, 계절이 어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주야장천으로 일에 파묻혀 살다가 계를 모아서 동남아 여행 다녀오는 것, 좀 값나가는 옷을 사 입어도 틀어진 허리와 벌어진 다리와 새까맣게 탄 얼굴에 맵시라고 안 나는 이 촌티는 어쩌라고? 할 말이 참 많지만 목구멍으로 삼키고 맙니다.

집 앞의 다랭이 논 대신 버스가 다니는 마을 앞길 가까이 조금 넓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습니다. 논으로 내려가다가 동네 형님들을 만나게 되면, “논 메러가나? 니도 참, 복도 없다…. 이 무신 고생이고?”

허걱, 농사지으며 동네분들과 도란도란 재미지게 살고픈 나의 희망찬 꿈을 복 없음으로 일괄정리하다니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분명히 애정의 말씀일텐데, 농사짓는 우리 자신에 대한 연민이 확연이 드러나는 인사입니다. 농촌살이가 고되다 보니 우리 자신들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언니가 자신도 꿈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2층 집에 장미넝쿨 어우러진 담장을 하고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노을을 봐도 좋겠고, 하늘을 봐도 좋을 그런 소박한 바람이 있었는데 현실에서는 도저히 그 꿈 가까이 갈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나절 내내 긴긴 밭고랑에서 혼자 풀을 뽑다보면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외롭고 서러운지, 왜 맨날 해도해도 일이 끝이 없는지 모르겠다 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은 못난 자신 탓을 할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 못나다니요, 이만큼 훌륭한 이들이 또 있을까요? 그냥 농촌에 사는 것 자체로도 훌륭한 것이지만, 거기에서 속이 깊어져가며 제 역할 해내는 그 자체가 훌륭한 것이겠지요. 문제는 세상에서 차지하는 농사짓는 여성농민의 자리가 그렇다는 것이겠지요. 세상이 문제라면 세상을 바꾸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세상은 몰라줘도 또 속 깊은 누군가는 알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 어려운 조건에도 농사지어 주어서 삼시세끼가 행복한 것이고, 당신들이 고향을 지키고 있어서 갈 곳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경제도 덜 휘청거리는 것이라고. 평생 배우는 것이 인생이라 치면 이참에 우리 인사법 하나 배웁시다. 당신들이 있어 너무 고맙고 덕분에 우리가 잘 산다고, 돌아가는 길에 먹을거리를 싸 준다면 절대로 공짜로 받아가지 말 것이며 배의 값으로 인사할 것, 가정의 달 5월에는 진짜 수고하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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