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 바뀐 시장의 ‘일상’

  • 입력 2015.04.25 22:48
  • 수정 2015.04.25 22:54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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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안혜연 기자 · 사진 한승호 기자] 

▲ 본지 안혜연 기자(오른쪽 세번째)가 지난 23일 새벽 경기도 수원시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원협공판장 채소 경매에 참여해 농산물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차도 인적도 드문 새벽 2시 반. 하지만 수원시농수산물도매시장은 하루 중 제일 활기를 띄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지난 23일 수원시장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거성상회를 방문했을 때 직원들은 경매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전에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가락시장에서 ‘장’을 보는 일이다.

보통 중도매인들은 저녁 10시 경 필요한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해 가락시장으로 출발한다. 상품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다. 가락시장으로 물량이 집중되기 때문에 지방도매시장에서 발주처가 원하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선 해당 도매시장 경매에서 끌어오는 물건만으론 부족하다.

거성상회의 한천우씨는 “다른 지방도매시장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중도매인들의 영업 환경이 굉장히 어렵다. 1차적인 물량은 일단 가락시장으로 다 빠지기 때문에 지방도매시장으로 들어오는 물량은 풍족하지 않다”며 “늦어도 저녁 10시까지는 나와서 가락시장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 안혜연 기자가 경매가 완료된 양배추를 살펴보고 있다.

새벽 3시부터 시작된 경매의 첫 품목은 양배추. 총 29개 점포, 소수의 중도매인들이 경매에 참여하지만 경쟁은 치열하다. 다른 중도매인에게 응찰가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응찰기를 몸 쪽으로 바싹 붙여 손을 바쁘게 놀린다. 내가 경매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으로 응찰기를 눌러보았지만 도무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경매는 빠르게 진행됐다.

양배추에 이어 당근 경매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사의 호창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가격을 올리겠다는 신호였다. 이날 경매사의 목표는 당근 20kg 상품 낙찰가를 1만5,000원까지 올리는 것. “조금 더 써봐라”고 하는 경매사와 어떻게든 가격을 낮추려는 중도매인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결국 최종 낙찰가는 1만3,100원. “오늘 상품이 별로 좋지 않다”는 한 중도매인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구매자 사이에서 선호도가 낮은 ‘왕’ 등급의 당근이 경매에 들어가자 아무도 응찰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경매사가 “좀 찍어보라”라고 하자 마지못해 한 중도매인이 응찰기를 누른다. 운임비나 겨우 나올까 하는 가격에 조금 씁쓸함도 느껴졌다.

경매를 지켜보다보니 어떤 기준으로 가격을 정하는 건지 궁금해져 한씨에게 질문하자 “원래는 시장 나름대로의 기준을 형성해야 하지만 현재 기준은 전부 가락시장이다”라며 “휴대폰으로 실시간 경매 상황을 확인하고 여기서는 좀 낮게 사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도매시장에서 가락시장의 갖는 위치를 새삼 다시 한 번 깨닫는 한편 지방도매시장의 열악함도 안타까웠다.

나름대로 농산물 상품성을 구분해보고자 열심히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 중도매인이 “출하자의 이름만 보고도 상품성을 짐작할 수 있다”고 귀띔해왔다. 지속적으로 좋은 품질의 상품을 출하하는 농가는 시장에서도 신뢰를 받는다고.

낙찰이 되는 동시에 중도매인과 하역노조원은 상자에 중도매인 번호를 적고 점포로 물건을 보내거나 경매장에서 구매처로 바로 물건을 보낸다.

▲ 거성상회 한천우씨가 안혜연 기자에게 농산물 품질 구분법을 설명하고 있다.

새벽 3시부터 4시 30분까지 모든 채소 경매가 끝나면 각 발주처로 물건을 소분해 배송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품목과 단위를 꼼꼼히 확인하고 신속히 물건을 나눠야하기에 나 같은 ‘초짜’는 감히 손을 못 대고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이런 작업은 아침 11~12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저녁 10시, 다시 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시장 사람들의 일상이다.

“시장 일은 다 육체노동이지. 물건 옮기고 수레 끌고…. 여간 힘든 일이 아냐. 하지만 일자리 창출도 제일 많이 되는 곳 중 하나도 시장”이라며 한천우씨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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