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약칠 때 안 싸우면 부부 아니다?

  • 입력 2015.04.24 16:12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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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봄비가 잦습니다. 한 번 시작하면 사흘 이상 연속으로 비가 내리다 보니 봄철 영농준비도 차질이 생기고 월동농사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늘, 양파에 무름병이 생겨 군데군데 물러빠집니다. 가을에 심어 늦봄에 수확하는 장장 8개월간의 이 농사는 농민들의 손이 참 많이 갑니다. 이제 그 마지막 수확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병이 생기다 보니 애간장이 탑니다. 비가 그만 내리고 바람이 불어서 통풍을 좋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유책이지만,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하다보니 대신 농약을 칩니다. 무름병에 좋다는 약의 종류를 돌려가며 반복적으로 칠 수밖에요.

농약칠 때 안 싸우면 부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농약칠 때마다 부부싸움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일단은 농약이 몸에 해롭습니다. 그리고 농약 희석배율이 맞지 않거나 과다사용하면 농작물도 약해를 입습니다. 또 일정량의 농약을 일정량의 농작물에 살포해야 하는데 약이 남아도 문제지만 모자라게 되면 낭패입니다. 게다가 차라리 지금처럼 덜 더울 때는 좀 낫습니다만, 더운 여름철에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써서 농약살포를 할라 치면 그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이러다 보니 과민하기 짝이 없습니다.

농약살포를 할 때 약대를 잡은 사람이야 논 구석구석을 다니며 주도적으로 거기에 집중을 하지만 줄을 잡아주는 입장에서는 농작물을 보거나 다른 데 한 눈 팔기가 십상입니다. 아니 집중을 해도 상대방의 요구를 파악하기 어렵고 사인을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때 줄이 엉키거나 약기계에 이상이 생기거나 분량조절에 실수가 있으면 들판에서 고함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때만큼은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체면을 안 차리고 남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고함을 지릅니다. 기계소리는 크고 상대는 멀리에 있어 작은 소리로는 알아들을 수도 없습니다. 약치는 데에 집중안하고 뭐하느냐? 왜 줄을 제대로 못 잡느냐? 약이 얼마만큼 남았는지 신경 안 쓰고 뭐하느냐? 라고 하는데 거의 일방적으로 집중포화를 당합니다. 누가? 주로 아내 쪽일 것입니다. 이때만큼은 주종, 갑을관계가 확실합니다.

나도 나름 열심히 하는데 일방적으로 핀잔을 듣게 되니 엉뚱한 생각이 스물스물 피어오릅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 그렇게 욕먹을 만큼 크게 잘못했나? 이러는데 같이 일을 해? 말어? 오늘까지만 일하고 담부터 혼자 농약치라 할까? 못한다고 화를 낼라치면 나는 화낼 일이 더 많아도 이렇게 참고 사는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거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문제가 커집니다. 뚱한 표정을 짓고 씩씩거리기까지 하지만, 그것도 남편의 감정이 풀리고 나서야 가능한 대응이지 반사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화는 약자에게 내는 감정입니다. 힘이 세거나 높은 사람에게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에둘러서 표현하기도 하고 참았다가 다른 식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만큼은 즉자적으로 감정을 표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내에게는, 또는 남편에게는 화를 내도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습관이 생겨서 매번 그렇게 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에 표현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마음의 준비가 있을 때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지만 마음의 준비가 없을 때 당하면 마음의 상처가 깊어집니다.

아직도 농약을 치다가 싸우냐굽쇼? 오랜 갈등과 토론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방에 집중하는 것, 화내는 습관을 줄이는 것으로 타협안을 찾아가고 있는데, 또 모를 일입니다. 농사는 엉망이고 시간은 쫓기고 일은 많고 강아지가 풀려서 닭을 쫓는데 소나기까지 내리고 경운기 냉각수가 떨어져서 기계가 멈춰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순간에도 상대방의 작은 실수를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을런지, 없을런지 장담하기에는 이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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