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기계, 없어도 골병! 있어도 골병!

  • 입력 2015.04.12 02:16
  • 수정 2015.04.12 02:17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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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장마도 아닌 것이 일주일가량 봄비가 내린 탓에 온 동네가 조용하더니 날이 들자마자 들판이 분주합니다. 억지로 쉬어도 좋다고 봄비가 내리는 한동안은 마을회관이 북적거렸습니다. 부지런한 농민들이사 벌써 고추 심을 터까지 다 장만해놨지만, 때를 못 맞춘 농민들은 부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본격적으로 영농철, 완두콩, 감자, 강낭콩 등은 얼굴을 내민 지 오래입니다. 감나무 잎은 노지농사 시기를 점치는 측도인가 봅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무심결에도 감나무를 눈에 담으며 씨앗 심을 시기를 말씀하시곤 하십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여기저기 농기계 소리가 요란합니다. 경지정리가 안 된 논두렁에 물이 새지 말라고 관리기로 부드럽게 논가를 갈아주고, 못자리를 준비한다, 고추밭을 장만한다 트랙터가 분주합니다. 농사량이 몇 배에서 몇십 배로 늘어난 요즘에는 농기계 없이는 농사지을 엄두를 못 냅니다.

농기계 사용은 주로 남성들이 합니다. 정교한 조작과 힘이 필요하고 위험하기도 하여 힘이 좋고 기계 조작에 익숙한 남성들이 주로 다루는 모양새이지요. 그러다 보니 농기계를 주로 다루는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집니다. 각자 능력대로 하는 일인데도 농기계로 많은 양의 일을 소화하다 보니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으뜸이 되고 그렇잖으면 딸림이 되는 모양새가 되는 것입니다. 기계로 하는 일보다 몸을 직접 쓰는 일이 훨씬 힘든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허리 굽은 할배들보다 허리굽은 할매들이 더 많은 것이겠지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 강모 농민 국회의원 사모님, 그 큰 트랙터로 소똥을 치우는 남편이 하도 대견해서 트랙터 바가지가 닿지 않는 곳에는 사모님이 직접 삽질해서 소똥을 담아주며 보람차하고 맛난 반찬도 많이 해드렸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동차 운전을 배운 사모님이 직접 트랙터를 몰아보니 삽질보다 훨씬 편하더라는, 그래서 억울하더라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혹시 농기계 사용이 편리하니까 남성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건가? 아니겠죠? 아닐 것이라 보고.

그런데 한 가정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특히 값비싼 대형 농기계가 있는 농가일수록 갑이 됩니다. 농사일정을 잡는 것도 농사일을 나누는 것도 대형 농기계를 가진 농가에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여성가구주만 농사를 지을 경우 사정은 더 해서 농기계를 가진 이웃에게 의탁하다시피 해야 합니다.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미리미리 그 집 농사일정을 파악하여 일을 거들며 나중을 기약하는 애달픔이 있지요. 그 마음을 누가 다 알겠습니까?

억울하기는 농기계를 가진 농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천만원씩 하는 농기계를 사고 나면 그 기계 빚에 눌려 옴짝달싹하기가 어렵습니다. 해마다 몇 백만원씩 기계값을 갚아야 하고 또 그 와중에 몇백만원 짜리 작은 기계를 하나씩 사고 나면 한 해 농사이익금은 순전히 농기계 값 밑천으로도 부족합니다. 기계사용을 못하게 되어도 골병, 기계값 대느라고 골병, 이래저래 농민의 처지가 딱하기만 합니다. 그 와중에 남편은 트랙터 가격을 자꾸 알아봅니다. 고장이 잦고 마력이 낮은 트랙터를 바꾸고 싶은가 봅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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