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14회

  • 입력 2015.04.06 00:11
  • 수정 2015.04.06 00:20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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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소문은 빠르기도 빨라서 권순천이 돌아간 다음 날로 면장이 선택을 찾아왔다. 흙먼지 길을 자전거로 온 면장은 선택을 보자마자 잃었던 자식이나 만난 듯이 손부터 잡았다. 선택으로서는 더러 안면이 있었지만 면장이 선택을 알았을 리는 없을 터였다.

“내 자네 소문은 익히 들었네만 우리 면에 이런 인재가 숨어있을 줄이야. 하여간 우리 손 잡고 잘 해보세.”

▲ 일러스트 박홍규

4.19후에 민선으로 뽑힌 면장은 전부터 공무원이었던 이였다. 나라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시골 면장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찾아온 목적이야 뻔한 거라서 선택은 엉거주춤 몇 마디 대답만 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 해에는 모든 게 급박하게 돌아갔다. 결국 재건운동의 간사를 맡아서 날마다 사무실에 출근을 했는데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무언가 농촌을 위해 큰일을 하는 것처럼 했지만 지역에서는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캠페인적인 면이 더 컸다. 마을의 유지들이 이름을 걸고 사무실에 모여서 잡담 비슷한 이야기나 주고받았다. 위에서 시키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은 선택을 비롯한 몇몇 젊은이들과 공무원이었다. 공무원들이 적극 도와주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없었다. 조직 내부에 다시 청년부나 부녀회를 조직하는 일도 거의 강제적으로 모든 주민들을 가입시켰기 때문에 서류상으로 꾸미기만 하면 되었다. 시골 청년이나 젊은 부녀자들에게 감투를 씌워주고 책임을 맡기자 그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나갔다. 꽤나 귀찮은 업무인 각종 표어나 포스터를 붙이는 일은 간단하게 학교에 내려보내면 되었다. 어린 학생들도 재건운동 촉진대라는 이름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에 저마다 제 마을에 포스터 붙이기 따위는 오히려 신나는 일이었다. 날마다 교장의 훈화가 이어졌고 아이들마저도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한다는 이상한 흥분 상태에 빠지곤 했다. 정작 재건운동에 시들해진 건 선택이었다.

그 해 7월에 정부는 새로운 농업협동조합법을 통과시켰다. 지난 민주당 정권에서 초안이 마련되긴 했지만 마냥 지지부진하던 법안을 군사정부에서 신속하게 공표한 것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8월부터 농협중앙회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일제히 통합농협의 업무를 개시했다. 선택은 이런 과정을 보면서 자기가 일을 할 곳은 재건운동이 아니라 농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재건운동은 딱히 농촌의 운동이 아니라 전국적인 계몽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대한 조직이 그러하듯이 별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농협이라면 달랐다.

이미 청년회 시절에 농협에 대해서 권태헌에게 몇 차례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농협에 대해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있던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 농촌이 살 길은 오로지 농협 외에는 없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농협이 농민들의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여전히 농민들을 짓누르는 고리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농협만한 게 없을 터였다. 사실 농협은 이미 4,5년 전에 생기긴 했지만 농민들조차도 그 존재에 대해서 깜깜이었다. 우선 농협이 면사무소와 무엇이 다른지도 알지 못했고 농협 직원이 곧 면서기와 다름없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공무원들이 주도가 되어 조직된 농협은 농민들에게 아무런 신뢰를 받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농협과 농업은행이 통합되고 군사정부에서 힘을 실어주자 갑자기 농협이 농촌에서 중심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전국에서 이만 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결성되고 농촌에서 뜻있는 일을 해보고자 했던 젊은이들이 속속 농협으로 뛰어들었다. 선택과 비슷한 농촌의 청년들은 농협을 강화하려는 군사정부의 정책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였다. 정부에서도 그들에게 농협운동에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정식 직원이 아닌 그들에게 주어진 직함은 개척원이라는 것이었다. 농촌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마을주민의 신뢰를 받는 젊은이들로 개척원을 선발하라는 게 정부의 정책이었고 선발 권한은 군조합장에게 있었다. 선택은 이미 개척원보다 훨씬 높은 지위라 할 수 있는 재건운동의 간사였지만, 간사 직을 내려놓고 제 발로 농협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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