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연재 ➌ ] 농협 계통구매, 무엇이 문제인가

유기질비료 지원사업 신청제도 변경, 농협의 역할은?

  • 입력 2015.03.30 09:07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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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전빛이라 기자]

지난해 유기질비료 지원사업 신청제도가 바뀌었다. 이제 지역농협이 아닌 해당 지자체에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물량도 제한을 둬 과거처럼 원하는 만큼 받을 수도 없다. 제도 변경의 가장 큰 목적은 투명성 제고. 과거 지역농협과 친분이 있는 일부 농가가 필요 이상의 물량을 받아가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것이 이번 제도 변경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농촌 현장에서는 아직까지도 필요 물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민원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을 써야 할까. 신청제도 변경 전 필요한 물량만큼만 받아오던 농가도 기존 물량의 30%를 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지자체와 지역농협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피해 농민들은 농협이 계통구매 수수료만 챙기고 농민들의 피해를 방관하고 있다며 입을 모은다. 섣부른 정부의 제도 변경으로 결국 농민들의 피해만 커져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해할 수 없는 ‘계산법’

“신청을 하든지 안하든지 무조건 배정 돼요. 농지원부에 나와 있는 면적대로 배정이 되는 거예요. 원래는 농협이 농가별 신청 현황에 따라 배정했는데, 지금은 면사무소에서 배정 업무를 전담하고 있어요. 실사가 안 되고 있는 거죠.”

경남 진주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있는 A농민은 유기질비료 신청제도가 바뀐 지난해 필요물량의 30%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신청 기관이 면사무소로 변경되면서 결국 농협 대신 그나마 마을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마을 이장이 실사를 도맡게 됐기 때문이다. 각 읍·면 이장 재량에 따라 배정 물량에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각 지역 토양·품목에 따른 필요 물량은 지금까지 사업을 해 온 농협이 가장 잘 알 터. 그러나 정작 계통구매로 농가에 유기질비료를 공급하고 있는 농협은 실사 업무에 참여하지 않다 보니 필요한 물량을 배정받지 못한 농민들만 발을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농가가 필요 물량 이상을 가져가는 부정 수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변경된 유기질비료 지원사업. 그런데 농가별 배정량 ‘계산법’에 시설재배 농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젓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전수조사에 답답한 건 농민뿐이다.

A농민은 “보통 ㎡당 퇴비 한 포가 들어가는데 정부에서는 한 포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옛날보다 토양이 활성화 됐다는 것이다. 계속 쓰면 산성화되기 때문에 ㎡당 한 포만 제공하고 있다고 하더라”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고령농가의 경우 다 쓰지도 않고 심지어 남는 지역도 있다. 이런 계산법이라면 시설재배가 많은 특수지역의 경우 너무 부족하다”며 “지난해도 항의가 심해서 지자체가 추가 배정을 했는데, 올해도 배정량이 부족하다. 추가배정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농가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지난해 일부 지자체에서는 유기질비료 부족물량 지원을 위해 지자체 예산을 투입, 기존 배정 수준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A농민은 또 “전수조사를 한다고는 하는데, 현실과 괴리감이 매우 크다”며 “특히 경남의 경우 시설재배 농가가 대부분이다 보니 유기질비료를 다른 지역, 다른 작목보다 많이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고려되지 않으니 오히려 받던 물량도 못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협중앙회-농식품부, 데이터 공유 필요

같은 지역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고 있는 B농민은 이같은 문제의 원인은 농협중앙회와 농림축산식품부간 데이터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B농민은 “시설재배 농가는 일반 노지에 비해 퇴비 사용량이 두 배에서 세 배가량 더 많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인 정보도 공유가 되고 있지 않으니 단순 면적에 따라서만 배정이 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어 “기존 사용량을 무시하고 배정하니 보조 금액은 늘어났지만 대농들이 받는 물량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2014년도 전체 유기질비료 지원 물량은 3,200만톤, 약 7,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2,700만톤이 부숙유기질비료, 즉 퇴비이며 포당 평균 단가는 약 3,700원이다.

지역농협이 비료 공급 과정에서 농민들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최대 6%, 중앙회가 업체들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0.9%. 결국 전체 수수료는 최소 6.9%로, 지난해 물량으로만 계산해도 7,000억원의 6.9%, 약 483억원이 농협 수수료로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계통구매 비료 한 포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총 6.9%의 수수료는 변동이 없는 데 농협의 역할만 줄어든 셈이다.

섣부른 정부 정책 변경이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농협이 아닌 마을 이장이 전수조사에 참여하면서 업체와 이장간의 로비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것. 이번에 변경된 유기질비료 지원사업 시행지침에 따르면 공급업체는 직접 농가에 발주하고, 농협 담당자가 실물 공급 여부를 확인하도록 돼 있다.

B농민은 “농촌의 고령화로 대부분 이장들이 일괄적으로 신청하고 있다”며 “그렇다보니 업체들이 이장들에게 포당 평균 200원을 지급하는 등의 로비가 이뤄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섣부른 정부 정책 변경으로 농민들의 어려움만 가중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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