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바닷가 공동체 언니들

  • 입력 2015.03.28 11:02
  • 수정 2015.03.28 11:03
  • 기자명 구점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구점숙 (경남 남해군 삼동면)
아는 사람의 권유로 3년 전부터 인근 바닷가 마을 언니들과 겨울 공동 작업을 합니다. 마늘멀칭(난지형 마늘농사에서 두세 잎이 돋아난 어린 마늘 위에 비닐을 씌워 그 위로 마늘을 빼는 일)작업을 끝낸 바로 직후, 11월 초부터 겨우내 굴작업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풍광이 좋은 남해바다에 감탄하며 구경만 하다가 막상 바닷일을 같이 하려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녔습니다. 굴을 까는 것도 손에 익지 않고 물때에 맞춰 자연산 굴을 채취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굴 껍질의 이마부분을 정교하게 때려서 알굴을 빼 내야하는데 내 손을 찍어 멍이 들기도 하고, 남들은 두 개 깔 때 하나도 못 까며 버벅거리도 했습니다. 한달에 두 번씩 바뀌는 밀물과 썰물 시간도 알기 어려웠습니다. 바람이 불면 바람 분다고, 비오면 비온다고, 강추위에는 또 그 핑계로 쉬고 싶은데도 언니들은 군말 없이 척척 억척으로 일을 해냈습니다. 웬만한 바람과 추위에는 아랑곳 않고 각자 주어진 대로 또는 누군가의 빈 구석을 채워가며 공동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지난 겨울에는 공동으로 아주 비싼 오리털 점퍼를 사입기도 했습니다. 굴을 까다가 뻘묻은 옷을 그대로 입고 가서 고급스런 매장을 떼지어 다니면서 당당하던 모습에 재미있었습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할 소비를 여럿의 힘으로 해본 것입니다. 또 없는 짬을 내어 태백으로 겨울 기차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저마다 간식 한 가지씩을 준비해서 나누는 재미도 좋았고 아니, 먼 곳을 다녀온 그 자체로도 좋았습니다. 언니들은 잘 노는 것이 일 잘 하는 것의 밑천이라는 것을 잘도 아나봅니다.

누가 배워준 것도 아닐 것인데 오랜 시간 공동 작업을 하며 더욱더 리더쉽을 키워가고 조직을 관리해 내는 대표언니, 손이 빨라 일을 잘 하는 언니, 말재주가 좋아 끝없이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펼치는 언니, 노래를 잘 하며 분위기를 높이는 언니 등 저마다의 개성이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가 굴러갑니다. 가끔 언성이 높아질 만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가차 없이 비판하거나 또는 돌려서 웃는 낯으로 달래기도 하며 공동체가 유지 발전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성 공동체의 전형을 보게 된 것입니다.

흔히 여성들의 모임이 잘 된다고 합니다. 각자의 개성을 전체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무지하게 노력한 결과겠지요. 서로에 대한 얼마나 많은 관찰과 생각과 실천이 조화로움을 만들어냈겠습니까? 이를테면 주위의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발달해 조화롭게 된 것이데, 이 또한 타고나서인지 노력한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 덧붙이자면 누군가가 말하기를 권력의 중심에 있게 되면 주위환경에 둔해지기 쉽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주위환경을 고려해야만 했던 여성들이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아온 까닭이어서가 아닐까요?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있는 사람들이 남의 처지를 잘 모르는 것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바닷가 언니들과 함께 겨울 공동체 생활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함께 하기에 서로의 힘이 필요하고 그래서 서로에게 맞추려고 애를 쓰며 만들어가는 공동체 생활, 이야말로 사람살이의 기본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경험을 제대로 몸에 익혀서 이웃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야겠습니다. 어울림에도 높낮이의 수준이 있을 테니까요.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