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연재 ➋ ] 농협 계통구매, 무엇이 문제인가

계통구매 농약 가격차, 시판상과 최대 40%까지

  • 입력 2015.03.21 09:10
  • 수정 2015.03.21 09:11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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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전빛이라 기자]

농협에는 판매장려금이라는 제도가 있다. 말 그대로 판매를 장려하는 제도로, 많이 파는 지역농협에는 더 많은 장려금을 준다. 이때 지역농협이 이 장려금을 수익으로 삼지 않고 농약 값을 낮추는데 사용한다면, 해당 지역농협의 조합원들은 다른 지역보다 저렴한 값에 농약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런데 농협이 계통구매로 공급하는 농약 물량은 전체 농약 시장의 5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농약 업체들에게 있어 시판상, 즉 일반 지역 농약방 역시 농협 못지않게 중요한 판매처다. 업체들은 판매장려금이 존재하는 농협에는 같은 제품이어도 시판상보다 높은 가격에 공급하고, 시판상에는 판매장려금만큼 가격을 내려 공급한다.

단순히 이런 구조라면 농협과 시판상의 농약 판매 가격은 비슷해야 하지만, 지역 곳곳에서 농협 계통구매 제품이 시판상보다 더 비싸다는 원성은 끊이지 않는다. 판매장려금을 농약 판매가격을 낮추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혹이 여기서 제기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시판상이 유통기한 제품을 덤핑으로 팔아 가격을 낮추는 것일까?

 

농협-시판상, 제품 가격차 1만원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나도 너무 나니까…. 왕복 50km가 넘는데도 함평까지 가서 사오는 거예요.”

전남 무안군 해제면에서 3만9,669㎡(약 1만2,000평)규모로 양파를 재배하고 있는 A씨는 해마다 농약을 구입하기 위해 차를 타고 군을 넘어 농약방까지 간다. A씨가 주로 이용하는 농약방은 함평군에 있는 P농약방. 그는 최근 이곳에서 6개 제품을 구입해왔다.

▲리도밀 큐 수화제 6,400원 ▲한우물 수화제 9,500원 ▲오티바 1만8,800원 ▲베노밀 수화제 4,000원 ▲다이센 4,000원 ▲미리카트 9,500원.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은 곰팡이병 약 ‘오티바’로, 이번에만 12개를 구입했다. 그런데 이 ‘오티바’의 농협 판매가격은 1만4,000원. 100ml가격이다. P농약방에서 구입한 200ml 가격으로 계산하면 2만8,000원인 셈이다. 농협과 시판상에서 같은 제품 가격이 9,200원이나 차이가 나고 있는 상황.

용량 차이뿐 같은 제조업체, 같은 성분의 곰팡이병 약이다. 그렇다면 시판상에서 구입한 제품의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저렴하게 파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유효기간은 최소 내년, 최대 2018년까지인 것도 있었다.

A씨는 “농협에 P농약사와 어떻게 이렇게 가격 차이가 나냐고 물어보니 도저히 그 가격에는 맞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며 “농약방에서 가져오는 가격 이하로는 절대 떼올 수 없다고 하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통구매 공급 가격이 더 높으니, 판매장려금을 이용해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농약방과 같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A씨는 “P농약방은 심지어 지난해에 비해 200원을 내려서 판매하고 있다”며 “이 약은 양파농가 사이에서 곰팡이병에 만병통치약이라 불린다. 그만큼 많이 쓰는 약인데 가격이 이렇게 차이가 나면 멀어도 당연히 P농약방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처럼 농협이 시판상보다 30%이상 비싸게 팔면 판매가 되지 않을 법도 하지만 판매는 꾸준히 되고 있다. 자가 차량이 없는 대부분의 고령농이 버스타고 시내에 나간 김에 농협에서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 A씨는 이어 “농약사는 이런 가격에 팔아도 가게를 확장하고 돈을 버는데, 농협이 저 가격에 팔면 벌써 빌딩 세웠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협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 양파 농사에 주로 쓰이는 곰팡이병 약 ‘오티바’ 200ml. 농협에서 구매하면 2만8,000원이지만 농약방에서 구입하면 1만8,800원이다. 같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무안군 농민들은 함평군까지 ‘원정’ 구매를 갈 수밖에 없다.

농협 무이자 혜택 ‘무용지물’

무안군 청계면에서 수도작을 하고 있는 B씨 역시 지역농협이 아닌 함평의 P농약사와 S농약사를 이용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구입하기에 간혹 농협의 무이자 혜택을 이용하기도 했다는 B씨. 그러나 최대 외상 한도에 따라 지금은 그조차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B씨는 “농협에서는 농가 신용에 따라 5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약정에 의해 연말까지 이자 없이 외상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나는 500만원어치 외상이 가능한데 이게 농자재, 비닐, 사료 다 포함한 가격이다. 농약만 해도 그 한도를 훌쩍 넘어가기 때문에 사실 농가에 이런 혜택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농협에서 또 농가가 요구하는 몇 개 제품은 농약방보다 4,000원씩 저렴하게 공급하기도 한다”며 “어쨌든 가격을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아니냐. 농약방은 직원이 한 두 명인데 농협은 아무래도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 건가 싶다”며 의문을 품기도 했다.

P농약사와 S농약사는 어떻게 가격을 낮출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현금구매와 박리다매 구조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P농약사 대표는 “보통 12월과 1월에 현금을 주고 대리점으로부터 물건을 가져온다. 여기서 1차 가격 인하가 가능해지고, 한 번에 많은 물량을 가져오기 때문에 2차 가격 인하가 가능하다”면서 “그렇다고 현금으로만 판매하는 것도 아니다. 카드 결제도 가능하고, 마진도 충분히 남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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