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3장 어떤 세월 11회

  • 입력 2015.03.15 12:22
  • 수정 2015.03.15 12:26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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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선택보다 대여섯 살 위였고 수원에서 이미 정식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선택과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처가가 선택의 고향 읍내였고 그런 연유로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선택을 찾아왔으니 천만뜻밖이었다. 서울에서 버스를 갈아타며 오려면 꼬박 하룻길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더욱 놀랍게도 그는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타고 왔다. 신작로에 이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긴 했지만 마을에 읍내에서만 가끔 보던 자가용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삼촌이며 어머니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권 주사님이 어떻게 여기를 오셨어요? 그간 안녕하셨지요?”

▲ 일러스트 박홍규

선택 역시 황망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얀 셔츠에 엷은 양복을 걸친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꽤나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 모습이었다. 게다가 자가용까지 타고 왔으니, 선택의 집 앞에는 금세 마을의 꼬마들 말고 어른들까지 모여들었다.

“정형, 이거 오랜만입니다. 내가 일부러 정형을 보러 왔지요.” 시간이 없다며 서두른 권순천이 툇마루에서 냉수 한 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쏟아냈다.

“지금 나라가 새 출발을 하는 건 알고 있겠지요?”

그가 말하는 새 출발이 얼마 전에 있었던 군인들의 정권 장악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기에 선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검은 가방에서 몇 장의 서류와 신문 등속을 꺼내더니 선택 앞으로 밀어주었다.

“혹시 정형이 사는 데가 아예 신문도 안 들어오는 깡촌일까 싶어서 두어 주 지난 신문을 가져왔소. 거기에 혁명 공약이라든가 혁명 정부에서 하려고 하는 여러 일이 잘 실려 있는데, 정형도 보았을 거요.”
얼핏 보니 이미 본 적이 있는 신문이었다. 1면에 군사혁명위원장 장도영 중장의 명의로 여섯 개 항의 혁명 공약이 실려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것과 권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연결 짓기에는 오리무중이었다.
“여기 혁명 공약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지금 정부는 비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나도 뭐, 정형이 알고 있다시피 말단 공무원이었는데, 내 매부 되는 사람이 이번 혁명에 주도적으로 가담을 했단 말이오. 그런 연유도 있고 또, 혁명에 공감하는 바도 있고 해서 적극적으로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보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소.”

대충 전후 사정은 짐작이 갔다. 권순천이 갑자기 자가용을 타고 나타났을 때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게 풀어졌다. 요컨대 군사혁명 와중에 그 끈을 잡고 벼락출세를 한 게 틀림없었다.

“우선 참, 정형은 워낙 생각이 깊고 많이 배웠으니까 나보다 잘 알 테지만 이번 혁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

그렇게 느껴서 그런지 권이 자신을 날카롭게 훑어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선택은 돌아가는 정국에 대해 특별히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선뜻 찬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날로 피폐해지고 엉망이 되어가는 농촌이나 사회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저들의 말을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게 선택의 생각이었다. 물론 수년 동안 청년회에서 배우고 토론한 바에 따르면 밑으로부터 농민들의 힘으로 변화를 시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막상 날마다 대하는 농민들을 보면 어느 하 세월에 저들이 변해서 농촌이 바뀌고 사회가 달라진단 말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 일쑤였다. 때로는 어떤 급격한 사태가 일어나서 강제적이라도 사회의 바닥부터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던 차에 군사 정변이 일어났으므로 선택은 일단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권이 이미 혁명 정부의 관리라는 것을 알고 나자 조금 다르게 말이 나왔다.

“글쎄요, 자세한 건 잘 모르겠지만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거야 온 국민이 바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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