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농협에 오물을 끼얹었나

춘천 농민 농협 개혁 투쟁 15년 … 개혁은 아직도 멀었다

  • 입력 2015.02.28 15:09
  • 수정 2015.03.01 18:46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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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 안혜연 기자]

춘천 농민들은 지난 15년 동안 농협 개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2000년 오물 투척 사건부터 2014년 조합장 비리 고발까지.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15년간 춘천 농민들이 벌여온 농협 개혁 투쟁을 통해 ‘농협개혁은 왜 어려운가’에 대해 알아봤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0년,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에 위치한 신북농협의 조합원 3명이 조합장실에 오물을 투척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대책위를 꾸려 조합 비리 진상을 조사하던 조합원들에게 농협이 갖은 협박과 압력을 가하는 데 분노한 대책위원 3명이 인분을 투척한 것이다.

사건은 당시 신북농협 김모 전무의 투서로부터 시작됐다. 김 전 전무는 당시 김모 신북농협 조합장과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농협중앙회 감사실에 조합 비리 내용을 투서하기에 이르렀다. 즉시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고 조합장 및 임직원 3명이 구속됐다. 구속사유는 시가 3,000만원에 달하는 백미 횡령 사건을 조합장이 묵인한 점, 직원이 전무의 도장을 임의로 새겨 공문서를 위조한 점, 직원이 첨단시설 원예자금 5,000만원을 불법 대출 받은 점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곧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에 석연치 않았던 조합원들은 스스로 대책위를 구성해 비리 진상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농협의 압박도 시작됐다. 오물을 투척한 조합원 중 한 명이었던 이예열 전 신북농협 대의원(현 춘천원예농협 대의원)은 “사람을 지역에 못 살 정도로 만들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대책위는 조합원들에게 진상조사를 위한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녔는데, 불과 2~3일 후 농협 직원이 서명한 조합원들을 찾아다니며 “저 사람들 빨갱이다”, “불순세력이다”며 철회 서명을 받았다. 심지어 조합은 대책위원들에게 명예훼손으로 조합원 제명 조치를 취하겠다는 협박장을 보내기도 했다.

▲ 15년 동안 농협 개혁 투쟁을 이어온 이예열 춘천원협 대의원은 “농협 개혁 전에 우선 농민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협의 적반하장인 태도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대책위원 3명은 농협으로 직접 찾아가 조합장과 전무 등 임직원들에게 오물을 투척했다. 이 대의원은 “악에 받치기도 하고 사건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조합장실에 변을 뿌렸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이씨 등 3명의 대책위원은 업무방해죄로 고발당해 한 달 간 형을 살고 벌금 300만원을 내야했다.

하지만 사건이 커지자 김 전 조합장은 결국 조합장직을 상실하고 실형을 받았다. 농협 개혁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농협 방해로 대의원직 상실

그러나 농협 개혁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오물 투척 사건부터 적극적으로 농협을 개선하고자 나선 몇몇 신북농협 대의원들은 계속되는 충돌 끝에 결국 2005년 농협의 방해로 대의원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대의원은 “조합장은 총회에서 의사봉 조차 들지 않았고, 대의원들이 기다리는데도 안건 처리 도중 술을 마시러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며 “또 우리들이 유인물을 나눠주려고 하자 평소 조합장과 막걸리잔 기울이며 친하게 지내던 대의원들이 유인물을 뺏으려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120명 정도였던 신북농협 대의원은 고령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농협 운영에 큰 관심 없이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성향이었다.

유인물을 안 뺏기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멱살잡이까지 하게 됐는데, 이 모습을 찍힌 한 대의원은 폭행죄로 고발 당하기도 했다.

2005년, 신북농협 대의원들은 농협의 한 해 결산을 해를 넘기도록 통과시키지 않았다. 농협의 방만 운영 때문이었다.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복지비용은 100만원 남짓했으나 전무 한 명이 연간 2,000~3,000만원의 연월차수당을 받아가고, 직원에게 퇴직금과는 별도로 지급되는 복지연금을 조합이 100% 부담하고, 직원 자녀의 대학교 4년치 등록금을 지원하는 등 혜택 차이가 엄청났다.

그런데 총회에서 결산을 통과시키지 않자 농협중앙회 강원지역본부장을 비롯한 20여명의 농협 관계자가 총회장을 찾아와 “오늘 통과 시키지 않으면 조합 문을 닫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결국 그렇게 결산은 통과 됐다. 한술 더 떠 농협 직원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결산 통과를 막은 대의원에 대해 “저 사람들 때문에 농협 문 닫게 생겼다”며 재선을 막았다. 이 대의원은 “아무리 우리가 얘기해도 나이든 분들이 우리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또 똥 뿌리고 감방 갔다 왔다 하니까 더 그랬다”고 말했다.

결국 개혁에 주도적이었던 5~6명의 대의원은 대의원선거에서 모두 당선되지 못했다.

부정·부패는 계속된다

이후 신북농협 대의원들은 춘천원협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도 이들은 농협 개혁에 앞장섰다. 이 대의원이 말했다. “나이 많은 대의원들이 그런다. ‘너네 말이 다 맞다. 맞는데 시끄럽게는 하지마라. 앞으로 잘하면 되지 않나’라고. 그러면서 계속 똑같이 하니까 문제다. 어쨌든 우리말이 맞다고 해주는 것만 해도 많이 바뀐거다. 춘천원협도 핵심적인 자료는 총회에 가져오지 않지만 그래도 태도가 많이 바뀐 편이다.”

하지만 농협 비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조합원들이 조합장 검찰고발 기자회견을 열면서 조합의 금융사고, 군납비리 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조사 도중 지난 2012년 이·감사 7명이 태국을 여행하다 현지 유흥업소에서 조합카드로 194만4,371원을 결제한 사실이 공개됐다. 여기에 해외성매매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후 문제가 된 조합장은 조합장직에서 물러났으나, 당시 태국 여행에 참여했던 이사는 현 조합장직에 앉았다.

이 대의원은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오히려 ‘그런 것 갖고 그러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며 “농촌 사회는 아직도 굉장히 보수적, 가부장적이며 시끄럽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번 해외성매매 파문도 비판을 던지기보다 ‘재수 없게 걸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의원은 “농협 개혁 전에 우선 농민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체계적인 조합원 교육이 필요하다. 기득권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농협법, 농협정관 등도 바뀌어야 한다”며 “농민들은 너무 분산돼 있고, 고립됐고, 경험공유도 안 된다. 지역 곳곳에 외롭게 농협 개혁 투쟁을 하는 농민들이 많을 것이다. 제도적으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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