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입장에서 사업해야 불신 극복한다”

  • 입력 2015.02.14 20:47
  • 수정 2015.02.14 20:50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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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어르신들이 마을잔치 때인양 꽉 들어차 있었다. 쭈뼛쭈뼛 농협직원 체험차 왔다고 인사를 건네자 박근호 금만농협 이사가 반겨주며 자리를 권해줬다. 박 이사는 마을주민들의 농협출자통장과 한창 씨름(?) 중이었다. 박 이사는 “우리마을이 단합이 참 잘 된다”며 마을자랑을 하다가 이내 다시 통장들로 눈을 돌렸다.

▲ 본지 홍기원 기자가 지난 9일 전북 김제시 신덕마을회관에서 진행된 금만농협 배당금 지급에서 박근호 이사의 농협출자통장을 확인해보고 있다.

지역농협 직원 체험을 하려 찾은 전북 김제시 금만농협(조합장 오인근)은 조합원 배당금 지급이 각 마을별로 이뤄지고 있었다. 9일 방문한 만경읍 신덕마을에선 이 곳에 사는 조합원 51명에게 배당금이 지급됐다.

금만농협이 조합원 2,100여명에게 모은 출자금 규모는 지난해 평잔기준 30억8,000만원 남짓이다. 금만농협에 따르면 배당률 4.87%에 이용고배당과 사업준비금을 포함하면 총 7.2%를 조합원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박 이사의 통장을 확인하니 출자금과 따로 꾸준히 적립한 사업준비금 내역이 기재돼 있다.

이 자리에선 배당과 함께 농협 사업을 직원들이 설명하고 조합원들이 건의사항을 전달하는 소통도 이뤄진다. 주선희 금만농협 과장은 지난해 금만농협 주유소 단가 문제를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타 주유소와 비교해 단가가 비쌌던 게 문제였다.

건의사항을 묻자 농협이 판매하는 농자재 품목이 다양하지 않다는 민원이 쏟아졌다. “고추비닐도 골고루 갖다놓아야 하는데 신청하면 뭐가 되는건가?” “농약도 골고루 갖다놓아야 해. 이약 저약 있냐고 물어봤는데 없다고만 하면 자꾸 조합과 멀어지지.” 배당도 중요하지만 경제사업에 관한 조합원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드는 장면이었다. 또, 기자로서 나를 돌아봤다. 기자가 지금껏 지역농협을 취재하며 던졌던 질문들이 현장 농민들의 질문과 비교해 덜 날카롭고 추상적이란 한계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농업전문지 기자가 현장과 밀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마을을 돌며 만나본 조합원들은 대체로 농협을 이해하려는 모습이었다. 신덕마을 전우식(62) 조합원는 “농협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경제사업을 잘해야 한다”며 “우리 지역은 벼농사가 주를 이루는데 농협이 쌀 판로 개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하려는 사람이 있겠나. 직원들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죽마을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대체로 잘하고 있다”면서 “농협이 일반 상인보다 농민을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가정에 벼를 직접 보내다

오후엔 금만농협 미곡처리장(RPC)에서 택배 포장작업을 도왔다. 1995년에 준공한 이 곳에선 5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작은 규모의 RPC지만 꾸준히 수매량을 늘리고 있다. 2013년도 4,000톤이던 수매량은 지난해 5,000톤으로 늘었다. 지난해 11월엔 한국외식업중앙회 서울시협의회와 농·특산물 홍보·판매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판로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금만농협 RPC가 특히 기대를 걸고 있는 판로는 무농약재배 벼를 가정에 공급하는 택배사업이다. 금만농협은 가정용정미기를 생산하는 업체와 협약을 맺고 이 정미기를 임대한 가정에 도정 전 무농약 인증을 받은 벼를 보낸다.

▲ 홍기원 기자가 택배로 보낼 무농약재배 벼를 상자에 담고 있다
포장작업은 기계 도입 전이라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했다. 손에 익지 않은 포장박스 접기를 마친 뒤 벼를 5㎏씩 비닐에 담기 시작했다. 나락을 붓기 시작하자 금세 비닐이 부풀어 올랐다. 20㎏ 1포대로 보내면 주부들이 벼를 옮기기 어렵다. 그래서 5㎏씩 나눠 포장한다.

“벼도 숨을 쉽니다. 비닐포장으로 신선도가 떨어질 수 있어 택배를 보낼 때마다 포장을 해야 합니다.” 투명한 비닐에 담긴 나락들이 다시 보인다. 하지만 집에서 밥을 짓기 귀찮아하는 소비자들에게 도정까지 해서 먹는 이 벼를 반길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규병 RPC 사업소장은 “사과껍질을 깍아서 사과를 유통하는 방법보다 껍질채 유통하는 게 보관상 좋다. 벼도 마찬가지”라며 “2013년부터 시작했는데 1달에 8~10톤 가량 무농약재배 벼가 나가고 있다. 현재 약 3,000가구에 공급되는 걸로 추산되는데 계속 유통량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 좋은 쌀을 공급하고 싶은 마음쓰임이 반갑다.

금만농협은 최근 보리사업 규모를 늘리고 있다. 존폐위기인 국산보리를 지키는 동시에 농가소득도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0월엔 한살림생협과 5년간 보리 1만톤을 공급하는 약정을 체결했다.

한살림생협은 올해부터 성덕면에 위치한 우리보리살림협동조합 보리가공공장에서 금만농협에서 수매한 보리를 가공해 사료를 생산하게 된다. 또, 금만농협은 2020년까지 보리 재배면적을 667만여㎡(약 201만평)까지 확충하고 연간 3,000톤까지 보리 생산량을 늘리게 된다.

특히 금만농협은 올해부터 수확기, 파종기를 들이고 보리건조시설을 설치해 영세고령농도 보리농사를 짓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규모화 추세에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들 역시 농협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농정철학이 반영된 계획이다.

성덕면 대석마을에 사는 고근영(50) 조합원은 “금만농협이 농민들에게 보리농사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며 “그래서 보리농사를 3~4필지 더 늘렸는데 시중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량구매했다”고 전했다. 그는 “가격도 좋지만 이 상인 저 상인 옮겨가지 않고 판로 걱정을 덜 수 있었던 게 좋았다”고 평했다.

“친환경, 계속 밀고 나간다”

아픔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금만농협은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체제 아래 서울시 친환경 학교급식이 흔들리며 약 5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기도 했다. 금만농협은 최근 다시 경기 하남시 친환경 급식사업에 도전하는 중이다. 허윤정 금만농협 전무는 “실사까지 끝냈고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며 “친환경 사업은 국민 건강과 조합원 소득 증대가 목표이기에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사업실패를 경험했으며 기본적으로 지역농협에 거리감을 느끼는 농민 조합원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근무경력이 30년이라는 허 전무는 “농협 위주가 아닌 농민 입장에서 사업을 해야 농민들이 믿고 따른다”며 “직원들도 농민들이 있어 직장을 갖고 있다. 그러니 농민 입장에서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러면 사업이 자동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취업만 생각하고 농협에 들어왔다. 그런데 출납 업무를 보면서 1년 열두달 꼬박 농사짓고 상환 때문에 농협을 찾는 농민들을 보고선 마음을 달리 먹게 됐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농민 조합원들이 출자해 농협을 설립하고 고용을 창출하지 않았냐. 농민들에게 봉사하고 같이 호흡하면서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허 전무는 “우리는 특성상 고정고객들을 대한다. 그러니 마음과 마음이 닿는 소통이 필요하다”며 “직원들도 지역농협에 갖고 있는 선입견과 불신을 극복하려 노력할테니 조합원 여러분도 다가와 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다시 금만농협을 찾으면 이같은 바람이 이루어져 있을까. 언젠가 한 번은 이 만경들녘을 또 찾아야 겠다.

홍기원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 비닐포대에 담은 벼의 양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홍기원 기자가 저울에 찍힌 무게를 확인하며 추가로 벼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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