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어떤 세월 6회

  • 입력 2015.02.01 11:02
  • 수정 2015.02.01 11:03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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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던 2구 반장인 형기도 거들었다.

“그거 땜에 야반도주한 집도 여럿이여. 집안 풍비박산나고 어디냐, 저긔 부싯골서는 목매 죽은 사람도 나왔다니께.”

좀체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선택이 알기로 마을에서 도박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어간에 놀이삼아 하던 윷놀이 정도였다. 그 역시 윷판에 말을 놓는 윷이 아닌, 한 사람이 패를 잡고 다른 사람이 돈을 거는 식이었다. 일테면 물주가 걸을 치면 나머지 사람들이 각자 윷을 던져 물주를 이기거나 지는 노름이었는데 잔돈을 걸고 하는 것이라도 서로 시비가 붙곤 했다. 그만큼 시골 살림살이라는 게 고린 동전 한 푼 만지기 어려웠다. 그런데 채표같은 본격적인 도박이 마을을 휩쓸다니.

“이런 얘기해서 뭣허지만 인제 지난간 일이니께 털어놓자믄, 선택이 늬 삼촌도 두어 번 거기 끼었었어.”

기종이 쭈뼛거리며 털어놓은 말도 영 믿기지 않았다. 삼촌 같은 사람이 도박에 손을 댔다니. 그럴만한 여윳돈이 있을 리도 없었다.

“몰겄다. 다들 없는 살림인 줄 뻔히 아는데 그 때는 어디서 돈을 융통해 오는지, 옛말에 술값하고 노름 밑천은 어디서 나와도 나온다고 하더니, 꼭 그짝이었어.”

경찰서에서 정보를 알고 몇 차례 조사를 나오기도 했지만 좀처럼 도박 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했다. 보다 못해 나선 게 기종과 형기를 위시한 면내의 젊은 패였다.

“그냥 두었다가는 동네 꼴이 안 되겠더라구. 논밭 날리고 술독에 빠지고 이웃 간에 정리도 전 같지 않고 말여. 그래서 우리가 만나서 아주 들어엎자구 작당을 한겨. 처음에 열두엇이 모였었지? 아주 원수 질 생각을 허구 일을 벌였지.”

▲ 일러스트 박홍규

그들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면내에서 제일 큰 패거리가 하는 야밤의 채표판에 미리 연락해둔 경찰들하고 들이닥쳤다는 거였다. 사실 너나들이를 하거나 형님 아우님으로 지내고 조금 멀다 해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처지인 터에 이웃을 발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경찰들이 아무리 타락하고 모든 게 사바사바로 통한다고 하지만 도박에 대해서는 꽤 엄한 편이었다. 물주는 물론이고 거간을 한 자나 단순히 참여만 한 사람일지라도 치도곤을 당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경찰이라면 일제 때부터 범의 아가리만큼이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일시에 수십 명이 도박 현장에서 잡혀가자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기종이 패들은 처음부터 경찰과 합세를 해서 현장을 덮쳤기 때문에 그들이 경찰에 발고했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었다. 그들도 그 사실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 때는 참 난리두 아니었다. 첨에는 밀고를 했다고 상종 못할 놈들이라고 동네에서 내논 분위기였다니께. 그런데 경찰서장이 우리를 불러서 표창을 한다고 하더니, 그 날로 우리들헌테 완장 하나씩을 나눠주었어. 앞으로도 도박이나 불법 행위를 하는 자들을 발고하라는 뜻인지 어쩐지 ‘순시’라고 쓴 노란 완장을 나누어주더란 말이지.”

형기가 이어서 말을 받았다.

“첨에는 좀 쑥스럽기도 허더만. 그런데 고놈을 딱 차고 나서니께 사람덜이 완전히 달러지더라고. 아닌 말로 순시가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이 을매나 있을 것이여? 금세 소문이 나기를 우리가 순사가 되었다는 것이었지. 경찰이라는 말도 안즉 낯설어서 다들 순사라고 하는 판에 그런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니께 애어른이 이 다들 끔뻑 죽더라고.”

웃을 수도 없는 진짜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박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스물 서너 살 안팎의 젊은 축들이 면내에서 강력한 집단으로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을 중심으로 마을마다 청년들이 결속되어 이장은 몰라도 반장 정도는 그야말로 젊은이들로 세대교체가 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선택은 군대 가기 전에 했던 농촌운동이나 재열들과 꿈꾸었던 농촌 청년운동이 새삼 떠올랐다. 그 때 한창 논의하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농촌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운동에 나서고 젊은 세대가 농촌의 주역으로 교체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이 자연발생적으로 고향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선택의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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