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수의매매 속 들여다보니 ‘부실 투성’

대부분 수입농산물에 의존, 편법 거래 횡행

  • 입력 2014.12.14 11:49
  • 수정 2014.12.14 21:24
  • 기자명 안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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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12년 농안법을 개정해 경매·입찰만을 원칙으로 했던 도매시장 거래제도에 정가수의매매를 포함, 경매와 동등한 거래방식으로 허용했다. 나아가 농식품부는 2016년까지 전국 도매시장 정가수의매매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경매제에 익숙해져 온 도매시장 여건상, 고작 몇 년 사이에 정가수의 거래를 확대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진정한 의미의 정가수의매매 확대보다는 실적을 위한 정가수의매매가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가수의매매 도입 배경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농림부는 배추 한 포기 가격이 1만원 이상으로 폭등하는 ‘배추 파동’에 된서리를 맞았다. 이에 농림부는 이후 가격 변동 폭 완화를 위해 도매시장에 정가수의매매를 도입했다. 가격변동성이 심한 경매와 달리 물량과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정가수의매매로 가격 폭등락 안정을 꾀한 것이다.

농식품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각 도매시장에 정가수의매매 할당량을 부여하고, 도매시장 평가 항목에서 정가수의매매 비중도 상향 조정했다. 또 농협 공판장의 정가수의매매 선도 기능 수행을 위해 농협중앙회 자금 200억원을 산지농협에 무이자로 지원하는 혜택도 주고 있다.

하지만 출하자, 도매시장법인, 중도매인 모두 아직은 경매제에 익숙한데다가 도매시장법인은 정가수의매매를 수행하기 위한 인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이 가운데 농식품부가 부여한 목표치를 달성하려니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가수의매매, 수입농산물이 태반

정가수의 거래 물량의 태반이 수입농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수입농산물은 상장거래품목에 해당해도 통관과 동시에 단가가 정해져 시장에 들어오기 때문에 경매는 무의미했다. 그리고 정가수의매매가 도입되면서 도매시장법인이 수입농산물의 대부분을 정가수의 형태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가락시장에서 1~11월 동안 거래된 정가수의 물량은 전체 거래 물량의 11%인 21만7,598톤. 이 중 수입농산물 비중은 41%며 배추·무 전문 유통법인인 대아청과를 제외하면 48%까지 올라간다.

정가수의거래 물량이 제일 많은 품목은 바나나로, 전체 정가수의거래 물량 중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그 다음은 당근으로 역시 수입 물량이 많은 품목이다. 이 외에도 오렌지, 파인애플, 포도 등의 수입과일도 정가수의거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많이 정가수의로 거래되는 품목은?
(가락시장 2014.01.~11. 기준)
1. 바나나        20.47%
2. 당근           11.91 (수입 6.77%)
3. 배추            8.17%
4. 무                6.39%
5. 오렌지        5.63%
6. 파인애플    4.46%
7. 포도            4.42% (수입 2.26%)
8. 알타리 무    3.85%
9. 양상추          2.91%

10. 양배추      

2.85%

공사의 자료에 의하면 바나나, 수입 당근은 반입 물량의 99%가, 오렌지, 파인애플은 90% 이상이 정가수의매매로 기록됐다.

농식품부는 정가수의매매에서 국내산 비중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내산 농산물에 한해 시장사용료를 인하하고 저온창고 사용료를 면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 지난 9일 가락시장에 반입된 수입농산물. 대부분 상장품목에 속하지만 경매를 거치지 않고 정가수의매매로 기록된다.

경매 물량을 정가수의로? 선취 문제 발생
기록상장의 합법화…무늬만 정가수의

정가수의매매의 부작용으로 ‘선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경매사가 경매로 들어온 물량을 경매 전 일정 물량 뽑아서 대형 중도매인에게 정가수의 형태로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한 도매시장의 부추 경매장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중도매인들이 반입물량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경매장에 왔는데 일부 물량이 사라져있어 황당했더라는 것.

또 정가수의형태로 들어온 물건을 경매사가 특정 중도매인에게 밀어주는 일도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다. 경매사가 모든 중도매인에게 정보를 공개해서 일일이 거래를 성사시키기에는 업무량이 과도하게 많아지는 탓이다.

이런 문제들은 중도매인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정가수의매매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정가수의매매가 기록상장을 합법화한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중도매인들이 법인을 통하지 않고 물량을 수집한 후 서류상으로만 경매한 것처럼 꾸미는 ‘기록상장’이 이제는 정가수의매매를 한 것처럼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상황이 열악한 지방도매시장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대형유통업체 등 대외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도매시장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경매 외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점이다. 하지만 정가수의매매의 원래 취지를 살리기 위한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정가매매 : 출하자가 미리 판매가격을 정해서 도매시장법인에 판매를 의뢰하면, 법인이 구매를 희망하는 중도매인이나 매매참가인에게 판매하는 거래방식.
✽수의매매 : 판매가격을 미리 정하지 않고 도매시장법인이 출하자와 구매자와의 협의를 통해 가격, 수량 및 기타 거래조건을 정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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