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에게 ‘답’을 보여 달라

  • 입력 2014.12.07 17:33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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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저래도 답이 없습니다.” 툭, 내뱉은 말 한마디에 진한 체념이 묻어났다. 공급과잉으로 시장격리된 배추를 산지 폐기하던 날, 그날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기도 했다. 배추를 재배했던 농민은 좀처럼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야트막한 비탈에 위치한 3,300㎡(1,000평) 남짓한 배추밭을 트랙터로 갈아엎으며 그는 자꾸 뒤를 돌아다봤다. 어깨 너머로 으깨어지는 배추를 보며 농민은 두터운 외투의 옷깃을 여몄다.

벌써 12월이다. 2014년 달력도 이제 헐거워졌다. 올해를 시작하며 ‘농산물 제 값 받는 갑오년이 돼야 한다’고 외쳤건만 한 해를 되돌아보니 결과는 별 반 다르지 않다. 주식인 쌀부터 고추, 마늘, 양파, 배추, 감자 등등 제값 받는 농산물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마을마다 ‘양파산성’이 쌓이고 농민대회에서 각종 농산물이 불태워져도 가격 보장을 위한 정부 정책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공급과잉에 따른 시장격리, 시장격리에 따른 최소한의 보상이 지금껏 해 온 ‘매뉴얼’에 따른 정부의 대응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이에 반해, 농민들은 줄곧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주장해왔다. 국내 생산되는 농산물 중 일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국가가 매입해 농민에겐 소득보장을 소비자에겐 가격안정의 혜택을 주자는 것이었다. 특히, 올해는 이를 핵심으로 하는 ‘국민기초식량보장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농민들의 목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그러나 세밑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무엇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다. 몇몇 지자체나 지방의회 별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는 지극히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정작 대안을 내놓고 머리를 맞대야 할 정부와 국회가 뒷짐만 진 채 관망하고 있으니 말해 무엇 할까.

한파가 닥친 날, 배추를 갈아엎던 농민은 잠시 담배를 태우더니 혼잣말을 읊조렸다. “날을 잘 못 잡았어.” 이래저래 속만 상하는 농민에게 다가올 새해는 다른 희망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정부와 국회가 지금과 같다면, 답은 “아니올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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