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폭락 … 농산물에 수요공급의 법칙은 ‘없다’

공급량 부족해도 가격 하락 ‘기현상’

  • 입력 2014.11.02 20:22
  • 수정 2014.11.03 07:45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겨울배추 주산지인 해남의 한 배추밭에서 가격 폭락으로 수확조차 하지 못한 배추들이 썩어가고 있다.

사라진 ‘수요공급의 법칙’

자유경쟁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 일치할 때 가격이 정해지는 현상을 두고 ‘수요공급의 법칙’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법칙이 농업에서는 예외가 된다.

생산량이 많아지면 시장논리에 의해 농산물 가격이 내려간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병해충 등으로 공급량이 줄어들면 가격은 올라가야 마땅하다. 헌데 최근 우리 농업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바로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국민들의 먹거리 문제이니 만큼 정부가 이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통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를 낌새가 보이면 즉각적으로 필요물량 이상의 해당 품목을 수입해와 ‘물가안정에 기여’하지만, 가격이 폭락하면 농산물은 타의에 의해 자유경쟁 시장에 맡겨지게 된다. 생산량이 많으나 적으나 우리 농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그대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가계의 총 소비 지출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앵겔계수는 14%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농산물 값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농산물이 물가상승의 주범인양 ‘마녀사냥’을 당하는 사회분위기도 수요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이는 정부가 ‘가격’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농업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를 위한 ‘가격안정’과 생산자를 위한 ‘소득보전’ 정책을 병행해야 하는 정부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수요는 줄어드는데…

해마다 폭락하는 국내 농산물 가격의 주원인으로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가 지목되고 있다. 또한 육류소비를 줄여 나가는 현대인들의 식습관으로 인해 같이 판매되는 대파, 양파 등의 채소들도 함께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외식도 보편화 되면서 일반 가정에서 채소를 구입하는 비중도 적어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에 따르면 10월 배추 소비의향지수는 8월보다 18.7P 감소한 81.3으로 조사됐다.

과일 역시 수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추석 전부터 약세였던 배 가격은 추석 이후 수요 감소, 출하량 증가, 수입 과일 등의 이유가 겹쳐 지난해보다 14%, 평년보다 16% 하락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물량을 한 번에 소비하는 가공식품업체 등이 국내산보다 수입산을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는 데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식산업과 가공식품산업 규모는 점점 커져가지만 이들이 사용하는 원료들의 대부분이 수입산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정부 지원을 받는 농식품수출업체들이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은 aT, 즉 정부로부터 우수농식품구매지원자금을 받으면서도 사후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국내산원료 대신 수입산 원료를 이용해 가공식품을 만들었다. 해당 자금을 받으려면 업체는 국내산 원료를 30%이상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수입산으로 만든 가공식품을 대량 수출해 국내 수출량이 증가했다는 자화자찬을 일삼아 전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국내 생산량이 늘어나 가격이 폭락해도 수입물량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여기서 비롯된다.

늘어난 수입량, 줄어들지 않는다

지난 8월 건고추 값이 폭락했다. 가뭄과 바이러스병으로 수확량이 평년의 60%정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여전히 낮았다.

전년도 재고물량과 과도한 수입물량이 그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난해 건고추 수입량은 국내산 시세 하락에도 아랑곳 않고 9만6,000톤이 수입됐으며 올해도 이와 비슷한 물량이 들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2011년 국내산 고추 값이 근당 2만원까지 올라갔을 당시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규제를 완화해 가공업체들이 국산 고추 대신 수입산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업체들은 이후로도 국내산 대신 수입산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건고추와 같은 양념채소류는 가격이 하락하면 타 작목보다 더 큰 타격을 입는다. 대부분이 1년 농사이기 때문에 한 번 생산량이 결정 돼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하면 그 가격이 1년 내내 유지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산 채소 값 약세에도 중국산 김치가 범람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수출전략처가 2014년도 aT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수입된 중국산 김치는 총 10만3,202톤에 달한다. 지난해보다는 다소 감소했지만 올해 총 수입량은 20만톤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유명무실, ‘주산지’의 의미

해마다 줄어드는 수요에 대비, 공급량 조절로 가격 안정을 기하기 위한 ‘주산지 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6월 농식품부는 2004년 채소류 주산지 고시 이후 새로운 주산지 지정 기준을 마련했다. 주산지를 중심으로 수급 안정을 추진하겠다는 포부와 함께. 새로 고시된 주산지 재배면적 기준은 30ha~1,500ha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산지 지정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가격이 불안정한 주요채소류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주산지 지정 기준만 마련했을 뿐, 주산지 농산물을 보호하기 위한 ‘주산지 보호법’은 만들지 않아 주산지 생산자를 위한 실질적 대책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단지 주산지로 지정된 지역은 물량 많다는 이유로 자체 또는 정부폐기의 대상이 될 뿐.

최근 호남지역에서는 양파와 마늘 값이 폭락하면서 주산지 외의 곳에서 배추로 작목을 전환한 농가가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에 의하면 올해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평년보다 4%증가한 1만4,961ha로 조사됐다. 주산지에서는 대체 작목이 없고, 타 지역에서는 기존에 생산하던 작목의 시세가 낮아 가을배추로의 작목전환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겨울배추 역시 주산지인 해남, 진도 지역에서 마늘과 양파, 양배추 시세가 낮아 겨울배추로 작목을 전환한 경우가 많아 겨울배추 가격 폭락이 전망되고 있다.

겨울대파의 주산지인 진도도 마찬가지로, 타 지역의 작목 전환으로 인한 가격 폭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준고랭지와 경기권 하우스에서 기존작물 가격 하락에 따라 가을대파를 심는 경우가 늘어났다. 가을대파 물량이 겨울대파 수확기까지 밀리면서 결국 전국적인 재배면적이 늘어난 셈이다. 재배면적을 더 이상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 주산지가 타격을 입게 된다.

농산물값 하락, 회복은 언제?

줄어드는 수요, 늘어나는 공급량으로 국내 대부분의 농산물 값이 2년 연속 바닥을 치고 있다. 해매다 폭등락을 반복하던 농산물값이 이제는 아예 하락세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까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은 없다.

충남 당진에서 김장무를 재배하는 한 농민은 “15년째 가격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