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배추, 종자·비닐 선지급한 상인들도 포기

지역농협 계약재배 물량 감소 … “폐기대책 시급”
소득보전 지원 조례 개정운동에 주민 1,300여명 서명

  • 입력 2014.11.02 18:36
  • 수정 2014.11.03 07:46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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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지역은 최근 배추 거래 계약서가 휴지조각이 되고 있다. 지난 8~9월엔 농민들에게 종자와 비닐을 제공하며 포전매매 계약을 맺은 산지 유통상인들은 전화 한 통으로 수확만 앞둔 배추를 포기하는 추세다.

해남군 화원면 송촌마을로 가는 길은 배추밭이 감싸고 있다. 완만한 산등성이를 타고 자리한 넓은 배추밭은 이 지역이 전국 최대 배추 생산지라는 점을 알리고 있다. 한여름 한 철만 제외하면 늘 배추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이 해남지역이다.

▲ "가격을 낮출지언정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는 없었다." 유통상인들과 밭떼기(포전매매) 거래를 한 해남 배추농가들이 최근 가격하락에 따른 유통상인들의 일방적인 계약 포기로 울상을 짓고 있다. 사진은 전남 해남군 화원면의 수확을 앞둔 배추밭을 둘러보는 농민들의 모습. 한승호 기자

지난달 28일 만난 김현철 송촌마을 이장은 계약서 다발부터 내밀었다. 김 이장을 포함해 마을 배추농민 7명은 지난 8월 한 산지 상인과 가을배추 수매계약을 맺었다. 이 상인은 중도금 지급을 1달 넘게 끌다가 어제에야 계약 포기 의사를 밝혔다.

김 이장의 계약서를 살펴보니 가을배추 2,000평(약 6,611㎡) 매매대금은 1,10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젠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는 “배추 외에 양배추, 양파도 농사지었는데 올해 빚이 1,000만원 더 늘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어 “난 그나마 8년 전부터 절임배추 직거래를 시작해 나은 편이지만 (절임배추 직거래를)하지 않는 농가가 문제다. 화원면을 통틀어 직거래하는 농가는 100여 농가 정도”라고 걱정했다.

역시 화원면에서 6,000평 가량(월동배추 1,800평 포함) 배추농사를 짓는 주종룡씨는 “상인들이 가격을 낮추려하는 일들은 많았지만 지난해에도 아예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는 없었다”며 “대다수 상인들이 앞서 강원지역 배추계약에서 손해를 입어 포기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주씨는 “상인 몫인 3,600평에 관한 계약이 파기됐다. 하지만 몇몇 농가는 아직 계약이 파기되지 않아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전했다. 상인들이 계약 체결시 공급한 종자와 비닐을 법정에선 계약금으로 해석해 농민 마음대로 배추를 처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600평은 화원농협(조합장 최문신)과 계약재배한 가을배추다. 화원농협은 ㎏당 165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1포기(3㎏)에 495원하는 셈이다. 주씨는 이 가격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그는 “계약서를 보면 시장시세에 따라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1포기에 500원 남짓해야 손해를 안 본다. 기준에 따라 생산비가 610원이 나온다는 결과를 본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해남군이 지난달 밝힌 가을 및 겨울배추 재배면적은 가을배추는 1,648㏊, 겨울배추는 2,754㏊다. 이 중 농협계약재배는 전체면적대비 8%, 포전거래는 30%로 파악했다. 지역농민들은 특히 농협 계약재배 면적과 거래가격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화원농협 가을배추 계약재배 물량은 6,700톤이었으나 올해는 4,000톤(126개 농가) 남짓 전망하는 상태다.

화원농협은 1998년 지역농협들이 공동운영하던 김치가공공장을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1일 60톤의 배추를 가공처리할 수 있으며 김장철에 2공장까지 운영하면 최대 300명이 근무하는 공장이다. 그러나 최근 3년간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 근무하는 홍명표 팀장은 “한 해에 10억원 가량 적자가 나기도 했다”며 “신제품 출시와 수출 등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지역농민들은 정부대책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시장격리 조치는 작황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없다며 폐기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에선 해남군 농어업인 소득안정을 위한 농어업 소득보전 지원 조례 개정 문제가 쟁점이다. 해남군농민회(회장 김덕종)는 7월부터 조례 개정 서명운동을 펼쳐 1,300명이 넘는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이무진 해남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생산비를 조사해 생산비·최저가격 보장 문구를 넣고 10년 안에 기금 500억원(현재 50억원)을 조성하는 게 핵심 개정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무국장은 “기금 운용은 조례발동 조건을 충족하면 목표기금 조성 전에도 원금의 20%와 이자를 합친 범위 내에서 지원하고 원금은 의무적으로 보충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해남군은 기금조성 목표를 200억원으로 책정하는 등 주민서명안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조례 개정엔 긍정적인 분위기다.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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