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인과 쌀국수

  • 입력 2008.02.03 00:03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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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달 21일 농어업단체 대표 간담회에서 “앞으로 10년, 20년 살아갈 기반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촌이 1차 산업에 머물지 않고 2차, 3차 산업으로 가는 농업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쌀농사를 지어 경쟁이 안 된다고 하는데 일본도 (쌀로) 정종을 만들고 있다. 우리도 비싼 밀가루를 쌀로 대용할 수 없는지 연구해야 한다. 동남아에서도 다 쌀국수를 먹는데 우리만 밀가루 국수를 먹느냐”며 즉석에서 쌀 활용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발언은 현실을 모르는 즉흥적인 단견이다. 이에 부화뇌동하여 한식연에서는 시장에서 검증되지도 않은 쌀국수 연구 자료를 발표하여 발빠르게 당선자의 눈에 띄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의 입을 빌면, 밀가루보다 가격이 3∼4배 비싼 쌀로 국수나 라면을 만들 경우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기업들이 쌀국수를 외면하고 있으며, 국수와 라면은 서민들의 생필품이기 때문에 가격 변동에 매우 민감해 업체들이 출고가를 1원이라도 낮추기 위해 주력하는 상황에서 원가가 3∼4배 비싼 쌀을 사용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한다. 또한 쌀을 사용한다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입쌀의 소비가 확대될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이같은 이유 외에 무엇보다도 쌀국수가 외면을 받는 이유는 밀가루 국수의 경우 쫄깃한데 반해 우리 쌀로 만든 국수는 탄력성이 떨어져 식미가 좋지 않다는데 있다 또한 어떤 식품이 시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소비자의 까다로운 기호를 충족하는 상품으로 평가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농산물 가공식품들이 개발되어 시장에 나오지만 성공한 제품이 많지 않는 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쌀국수 역시 1990년대 말 국내 라면업체들이 쌀라면 몇 종을 야심차게 선보인바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은 바 있다. 최근에 웰빙 열풍으로 소비가 확대될 것을 기대, 업체들이 쌀국수의 명맥을 이으며 한두 종을 출시하긴 하지만 전체 라면시장의 1%도 안 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인수위원들은 최근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은 10여개 이상의 브랜드들이 호황을 이루며 수도권에만 150여개에 이를 정도로 성업을 하고 있으니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을 상대로 쌀국수를 판매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의견이 있으나 이마저도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다.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이 최근 유래 없이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지난해말 등록된 전체 외식업소수가 62만여개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150여개의 점포수를 가지고 있는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은 전체 외식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통계를 따로 낼 수도 없을 정도로 미미하기 때문에 쌀소비 확대에 전혀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쌀국수 발언은 농업에 대한 철학의 빈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마치 농업의 문제가 농업계의 노력 부족으로 인한 것이라는 안일한 시각을 여지 없이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농업의 위기는 농산물의 품질이나 가공 등의 문제가 아니라 개방농정으로 인한 무분별한 농축산물 수입과 농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보지 않고 마치 제조업 정도로 보는 천박한 자본주의 시각에 있는 것이다. 작금에 인수위에서 논하고 있는 농진청 폐지 문제 등을 보더라도 새정부의 농업 정책에 많은 사람들의 우려가 쌓여가고 있다.

  〈자유기고가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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