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지도사업, 국가기능이 되어야 하는 이유

  • 입력 2008.02.03 00:01
  • 기자명 고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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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안) 중 농촌진흥청 폐지에 대해 관련 전문가와 농업인들의 반대가 아주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체적인 것은 원안대로 하더라도, 농촌지도 기능은 농수산식품부에서 대신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비록 농촌지도 조직은 물론 기능까지 국가로부터의 퇴출을 선언한 원안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 농촌지도사업이 국가의 기본적 기능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개념을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농촌지도 개념 명확히 알아야

▲ 고순철 교수
국제식량기구(FAO)에서는 최근 2005년에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다소 장문이기는 하지만 아주 명확한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지도(extension)의 개념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재충전하고 싶은 정책결정자를 위해서..... 지도는 농촌 주민에게 비형식적, 참여적 방법으로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구와 수요에 기반을 둔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기능이다. 지도의 기능은 다양한 주제에 적용할 수 있는데, 그 기능이 농업에 적용되면, 농업지도이고, 보건에 적용되면 보건지도이다.”

이러한 서술에서 몇 가지 특징을 유추할 수 있다. 첫째는 농촌 지도는 좁은 의미의 농업지도가 아닌 광의의 의미로 사용되며, 그 목적이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농촌 사회를 개선함으로써 농촌주민의 삶의 질을 도모하는 사회적 서비스라는 점이다. 당연히 농촌지도사업의 대상은 농업인 뿐만 아니라 농촌주민, 더 나아가서는 미국의 경우처럼 도시 소비자도 포함될 수 있다. 둘째, 전달 기제에 있어 일반 행정과는 달리 비형식적, 참여적 방법, 즉 성인 교육적 전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바로 농촌지도가 서비스와 교육에 기반을 둔 사업이며, 대개 인·허가 등 규제·감독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일선 시·군의 농업 행정과 구분되는 점이다. 또한 그러한 전문성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에 농촌(생활)지도직이라는 전문 직렬로 공무원을 선발하고 끊임없는 보수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지도사업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약자-여성, 노인, 청소년, 장애우, 농민 등-를 보호하는 정부의 기본 기능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농촌지도는 전문성이 요구되기 영역이므로 농촌지도 조직과 기능을 개편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기존의 전문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인수위에서 발표한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질 경우, 우리나라 농촌에 주는 영향은 매우 부정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지방 분권화 시대라고 하지만, 다른 선진국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권한은 지방으로 주더라도 조정과 지원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공적 농촌지도사업의 특징이다. 이번 조치로 지방의 농촌 지도 기능은 존속하고, 중앙만 없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군의 재정 자립도가 낮은 때문에 지방 농촌지도사업은 중앙의 보조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지방 농촌지도사업 중 국비 사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8% 정도인데, 지방에 대해 보조를 할 수 없는 연구기관으로의 전환은 최소한 1/3 정도의 지방 농촌지도 사업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 농업 및 농촌 발전을 위한 농촌지도는 없어지고 농업 행정만 남는 셈이 될 것이다.

특히, 국가 간 합의가 어려운 UR, WTO 등 새로운 경제협약에서도 농업 연구와 지도 분야는 직접적인 생산보조가 아닌 한 보조가 허용되는 분야로 합의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적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다른 나라에서는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고, 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해 기존에 약화되었던 농촌지도 체계를 복구하거나 개편하고자 하는데 비해, 이번 우리나라의 정부개혁안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는 완전히 역행하는 처사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 결말은 무엇이 될 것인가 한번 생각을 해보아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인수위에서는 식품 산업의 강화를 통해 농업인들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이 역시 농촌지도 사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식품의 원료는 농·림·수산물이다. 원료 생산과 관련된 기술 경쟁력을 무시하고, 식품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가공 산업으로서의 식품정책을 수행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질에 관계없이 값싼 원료,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 원료 등을 사용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한 농업인이 식품산업에 참여할 경우 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농업인들은 원료 납품업자로 존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제조업자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지위를 가져다 줄 것이어서 이와 대응하는 교육활동이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 섬기는 올바른 방법은

민영화가 공적 지도사업 개편을 위한 최적의 대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다양한 형태의 지도사업이 존재하고, 이는 각 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최적의 방안을 모색한 결과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덴마크 등 농업 선진국들은 여전히 공적 재정으로 공공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농촌지도사업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의 농촌진흥청 모습이 항상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판단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기관이 수행하는 기능이 과연 국가적으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늦더라도 신중하게 개혁하는 것이 우리 국민을 섬기는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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