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산업 육성은 농민에게 친 ‘덫’

FTA 피해 대안으로 제시한 말산업
뛰어들면 제약 많아 ‘진퇴양난’

  • 입력 2014.09.06 01:3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산업은 FTA시대 농촌의 새로운 동력과 소득원.’ 수 년 전부터 말산업 육성을 추진해 온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말의 해를 맞아 대대적인 지원을 과시하며 내세우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말산업에 뛰어든 농민들은 말산업 육성 정책을 농민들의 돈을 수탈하기 위한 ‘덫’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농식품부는 농촌지역 신흥 산업으로 말산업을 적극 장려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도청 공무원이 직접 관련산업 종사자나 축산농민들을 찾아다니며 말 사육과 승마장 운영을 부추기기도 했다.

충북 청주의 최기영(54)씨도 그 중 하나다. 말 세 필을 구해 전통무예 복원 활동을 하던 최씨는 까다로운 기준 탓에 시설허가는 없었지만 도청 공무원의 권유에 따라 체험승마장을 운영하고 마필을 늘렸다. 한국마사회의 ‘전국민 말타기운동’ 시범사업장으로 선정돼 두 차례 시범사업을 치렀고 지자체 주관 승마 체험행사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그러나 2010년, 무허가 승마장을 다룬 언론보도를 계기로 대대적인 단속이 이뤄졌고 당시 청원군에서만 최씨를 비롯한 9명이 졸지에 범법자로 전락했다. 이듬해 3월 농식품부는 이들을 양성화하기 위해 황급히 말산업 육성법을 제정, ‘농어촌형 승마시설’ 개념을 만들어 신고 기준을 완화했지만, 기준에 따라 미등기 건물을 등기하려는 최씨에게 700만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됐다. 또한 농지를 전용하는 데 드는 농지보전부담금은 500만~1,000만원 정도로 계산된다.

▲ 정부의 말산업 육성정책이 뛰어들면 피해를 입는 ‘덫’과 같은 형태가 돼버렸다. 말산업이 농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사진은 최기영씨가 관리하는 마사의 모습.

농식품부의 홍보를 믿고 말산업에 뛰어든 이들 중엔 기존의 일반 축산 농민들이 많다. 소를 키우던 농민들이 축사에 말을 들이고, 필당 월 50만원 정도의 비싼 관리비를 충당하기 위해 체험승마장을 운영하는 식이다. 충남 천안에서 소를 키우다가 3년 전부터 말을 함께 키우기 시작한 전해인(46)씨는 농어촌형 승마시설 신고가 힘들어 승마장 운영을 하지 못하고 근근이 마사를 유지하고 있다. 농지전용에만 500만원 이상이 드는데다 전용을 한 후 이뤄지는 환경평가에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애먼 돈만 날리는 격이라 쉬이 부딪혀 보기가 어렵다.

전씨는 “농어촌형 승마시설이라고 신고를 받아줄 것처럼 만들어 놨지만 다 말뿐이지 할 수 있는 게 없다. 말은 타기 위해 기르는 동물인데, 사육하는 건 된다면서 타는 건 안된다고 법 타령을 하고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그는 “소를 팔아 버는 돈을 말에 투입하는 식이다. 그래도 인부 품값까지 따지면 매달 300만~400만원 적자가 난다”고 말했다.

정부의 권유에 따라 말산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범법자가 되고, 적자를 보고, 양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에 돈을 내야 하는 꼴이다. 농민들이 말산업 육성 정책을 ‘덫’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경북과 전남 지역에서 집계된 현황에 따르면 아직도 절반 이상의 말 사육농가가 승마시설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기영씨는 “말산업 육성은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수탈책이다. 말산업의 초지 규제를 완화하는 등 최근에도 말산업을 지원한다지만 모두 경주마를 생산하기 위한 기초작업일 뿐, 일반 농가를 위한 것은 없다. 분명한 대국민 사기인데, 결코 이대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분개했다.

현재 말 사육 농민들은 전국 단위의 말 축산인협회(가칭)를 조직중이며, 올 가을 한국마사회 강당에서 농어촌형 승마시설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