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파파

  • 입력 2014.08.23 07:38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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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나라가 ‘프란치스코 파파’ 열풍이다. 웬만한 인기연예인도 이 정도 열풍을 불러 내지 못했다. 인자한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표정하나, 손짓하나에 사람들은 그렇게 열광한다. 그가 가는 곳에는 늘 낮은 곳에 임하라는 메시지가 남는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은 물론이고 세월호가족이나 종군위안부 등 폭력에 의한 희생자들도 ‘파파’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프란치스코 파파’가 우리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드러내 놓은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사회가 부도덕하게 흐르고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노력들이 있음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방점을 찍고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따로있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주목 받지 못하는 자들,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상처받은 세월호가족, 용산참사, 강정마을, 밀양할매들과 이 사회가 연대의 끈을 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을 주문했다. 그런 이유로 ‘파파’는 신의 대리인에 걸맞는 행동을 한 것이고 그런 이유로 ‘파파’는 대중으로부터 열광적 추앙의 모델이 됐다.

혹자들은 그를 망해가는 기업의 CEO를 맡아 1년 만에 정상궤도에 올린 기업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소비자(신자)로부터 외면받고 직원(사제)들이 떠나가는 순간 혜성처럼 나타나 기업(천주교)을 살려내는 신화적 인물로 묘사된다. 종교를 기업에 비교한다는 것이 씁쓸하긴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싶다.

4박5일의 방한기간 동안 쉬지 않고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일정을 소화시키는 저력도 놀랍다. 그러나 한편으로 농업에 대한 걱정도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카톨릭이 농민운동의 중심에 있었음을 기억 한다면 개방농정이라는 폭력을 맞닥뜨린 농민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남기길 바랐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안의 최종수 신부가 ‘파파’를 만났다는 것이다. 최종수 신부는 젊은 날 정읍에서 사목하면서 고 이수금의장님의 가르침을 받았노라고 했다. 이후에도 계속 농촌사목으로 임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최종수 신부는 ‘프란치스코 파파’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려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쌀개방이라는 미증유의 폭력 앞에 떨고 선 농민들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든가. 우리가 먹어야 하는 음식과 성수가 모두 농업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파파’에게 전해 농민들을 위로 받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나마 최종수 신부를 통해 파파가 한국농민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 농민들도 위로가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쌀개방이라는 폭력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최종수 신부의 농업, 농민에 대한 끝없는 애정에 경의를 표한다. “비바 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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