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고율관세는 장기간 지속될 수 있나

  • 입력 2014.08.17 18:16
  • 수정 2014.08.17 18:21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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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정부는 쌀시장을 전면개방 하더라도 의무수입물량 이외에 쌀이 추가로 수입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핵심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문에 따라 300〜500% 고율관세를 확보하고, 둘째, 향후 그 어떤 FTA/TPP에서도 반드시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며, 셋째, 이 부분에 관한 정부의 의지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정부는 농민과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고율관세는 기본적으로 WTO 회원국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관세율이다. 그러나 FTA/TPP를 통해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 즉 FTA/TPP 등을 통해 미국산 쌀이나 중국산 쌀에 대해서는 별도로 낮은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쌀이 FTA/TPP 등과 연계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 수입량 가운데 약 20만 톤은 특정 국가에게 쿼터로 할애되어 있는데, 미국에게는 5만76톤의 쌀이 쿼터로 배정되어 있다. 만약 내년부터 정부 주장대로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환하게 되면 국가별 쿼터가 사라지게 되는데, 미국 쌀 수출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던 쌀 쿼터 권리가 사라지는 셈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 부분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협상을 요구해 올 것이며, 이미 미국 무역대표부가 올해 2월에 발표한 무역장벽보고서에 이 점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빠르면 올해 하반기에,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미국과 이 부분에 대한 다양한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그 협상 테이블은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고율관세를 정하는 협상 테이블이 될 수도 있고, 한미FTA 정례협의 테이블이 될 수도 있으며, TPP 가입을 위한 한미간 양자협의 테이블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쌀 수출업자의 이해를 반영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비공식적인 편법으로 미국 쌀에 대한 쿼터를 운용하는 것인데, 이는 중국을 비롯하여 다른 주요 이해 당사국의 반발이나 무역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산 쌀에 대해서는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고율관세를 적용하지 않고, 별도로 대폭 감축된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것이다. 만약 미국산 쌀에 대해서 특별히 낮은 관세를 적용할 경우 중국 역시 자국 쌀에 대해서 미국산 쌀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율 적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에게라도 별도의 낮은 관세율을 적용할 경우 정부가 말하는 고율관세는 그 순간부터 유명무실한 빈껍데기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를 믿어 달라’는 정부의 주장이 농민과 국민으로부터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이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향후 그 어떤 FTA/TPP에서도 쌀을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제도화하는 방법으로 농민들은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다. 즉 앞으로 정부가 쌀의 관세율을 변경하고자 할 경우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고, 국회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률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정부의 의지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법제화 요구에 대해서는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말과 행동이 다른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말로는 믿으라고 하면서도 법제화와 같은 실질적인 조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민과 국민들은 나중에 정부가 말바꾸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믿어달라는 정부의 주장을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공약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부분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 정부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고 있다.

만약 정부가 말처럼 그렇게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법제화 제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점을 챙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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