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처럼 밀어붙인 쌀 개방 선언에 맞서, 여성들이 뭉쳐 새 세상 만들고파

  • 입력 2014.08.10 18:11
  • 수정 2014.08.10 18:15
  • 기자명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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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례 전여농 부회장
태풍 나크리가 가고 나니 두 배 더 강한 할롱이 온다고 한다. 안 그래도 바람 많은 제주는 몇 년씩 되풀이되는 강한 태풍이 불어와 피해를 겪고 있다. 가뭄이 들어 난리가 나고, 태풍 피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사 피해는 손을 쓸 방법도 없다. 자연재해로 인한 정부의 농업 피해 대책이 부족하다고 수십 년을 외쳤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환경과 조건을 보장해 주지 않는 정부, 생산비가 보장되는 농산물 가격, 지속가능한 농사가 보장되는 정책은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몰려오는 이번 태풍에도 맘 졸이기는 매한가지다.

순식간에 강한 바람과 비를 몰고 오는 태풍처럼 정부는 쌀 개방을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였다. 국민의 대다수가 잘 모르고, 농민의 대다수의 반대가 있었지만 정부는 일방적으로 쌀 개방을 선언했다. 그 결과 수입쌀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태풍처럼 우리의 밥상으로 밀려드는 수입쌀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고율관세를 지켜서 쌀 수입을 최소화하겠다고 하지만, 정부의 주장 일 뿐 확실한 약속도 대책도 없다. 정부에 쌀을 지키기 위한 의지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쌀 개방 선언 대신 어떻게든 쌀 개방을 막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이제 쌀 개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밥상을 차려야 하는 국민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농민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인한 피해를 온 몸으로 겪고 있는 우리 농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평생을 허리 굽혀 땅에서 자라는 작물을 보살피기 위해 땀과 눈물을 쏟았지만 돌아오는 정부의 ‘쌀 개방’ 단 한 마디에 쓰러지고 있다. 논에서 자라고 있는 시퍼런 벼들이 쌀알로 맺지 못하고 갈아엎어지는 것은 농민들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쌀 농업의 미래를 보여준다. 쌀 개방 선언은 쌀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쌀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정부에 맞서 전국의 여성농민들이 8월 20일 서울에 모인다. 우리는 생산의 주체, 여성농민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농업, 식량, 농사를 위한 주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아와 빈곤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다. 생산하지만 못 먹고 굶주리는 여성들, 전 세계 만성적인 기아 인구의 60%가 여성이라고 한다. 기아와 함께 빈곤은 여성들의 삶을 위협한다.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알리안츠 그룹에서 ‘노년 여성들의 빈곤 위험’을 조사한 결과 65세 이상의 한국 여성 빈곤율은 47.2%, OECD 30개국 국가 가운데 1위였다. 돈이 없으니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굶주림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삶은 악순환의 연속이다. 결국 쌀 개방으로 인한 식량자급의 하락과, 먹을거리의 부족으로 인한 피해의 대다수는 여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여성들이 뭉쳐보려고 한다.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서도 농민뿐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로 쌀 개방을 막기 위해 힘을 모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성들이 뭉치면 새 세상이 온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여성들이 뭉쳐서 쌀 개방을 막아내고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길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한다.

‘쌀’은 식량주권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모든 농산물을 다 개방하고도 쌀을 지키고자 했던 이유, 어떤 나라든지 주식이 되는 농작물을 잃고 난 뒤 겪었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주식인 또르띠야의 원재료인 옥수수의 자급을 이루지 못해 폭등하는 가격이 국가의 위기로까지 이어졌다. 일명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었던 지난 2010년 아랍 국가의 민중들이 부패한 정권에 맞서 투쟁을 벌인 근본 원인은 기아와 식량위기에 있었다. 충분히 예상되는 끔찍한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쌀밥을 먹는 누구나 외쳐야 하는 것, 바로 ‘쌀 개방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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