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은 국치일

  • 입력 2014.07.26 09:56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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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 지난 18일 정부의 기습적인 쌀 관세화 전면 개방 선언은 농민에겐 말 그대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기자회견이 예정된 정부서울청사 앞 인도에선 한여름 밤 농민들의 노숙농성이 이어졌다. 농민단체 대표들이 삭발했고 지역에서 가지고 온 쌀이 정부청사 주위에 뿌려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각 지역별로 쌀 전면 개방 선언을 규탄하는 농민들의 행보 또한 거세졌다. 선언 당일 논을 갈아엎은 부산경남 농민들은 경남도청 앞에 농성장을 차렸다. 천막을 빼앗기면 다시 천막을 쳤다. 한 농민은 “경남 지역의 모든 임대 천막을 빼앗기더라도 천막을 다시 칠 것”이라고 소리쳤다.

광주전남 농민도 가만있지 않았다. 각 지역별로 뽑아 온 모를 광주역 앞 아스팔트에 심은 농민들은 ‘박근혜 퇴진’ ‘이동필 사퇴’ 등의 구호를 내걸고 쌀을 불태웠다. 새누리당 광주광역시당 외벽엔 진흙이 잔뜩 묻은 모가 날라들었다. 순천, 영광에선 논을 갈아엎었다. 농민들은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는 아픔”이라며 “농민을 포기한 정부와 맞서 싸울 것”이라 선언했다.

통합진보당 김선동 전 의원은 곡기를 끊은 지 엿새를 보내고 있다(24일 현재). 쌀을 끊음으로서 쌀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정부의 쌀 전면 개방 선언 이후 단 일주일여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 밖에도 농기계 반납 투쟁, 농민대회 등이 지역에서 준비되고 있다.

농민들의 거센 저항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부는 지금껏 농민과 진정성 있게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청회는 18일 당일을 위한 명분쌓기였을 뿐이었다. “쌀 전면개방은 주권을 팔아먹는 행위다”, “고율관세로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쌀은 역사다. 역사를 포기하는 것은 곧 우리 농업을 죽이는 것이다” 여러 농민단체 대표가 호소에 가깝도록 외쳤지만 정부는 이들로부터 등을 돌렸다. 사회적 합의기구가 필요하다는 야당 국회의원의 주문마저 무시했다.

결국, 입버릇처럼 쌀을 지키겠다 말했던 정부는 농민에 대한 의리, 농업에 대한 의리, 농촌에 대한 의리를 헌신짝 내팽개치듯 저버렸다. 농민들이 국치일이라 일컫는 18일은 이를 처절하게 확인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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