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협상 토론회에 대한 단상

  • 입력 2014.07.13 18:33
  • 수정 2014.07.13 18:44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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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진 원광대 교수
지난 7일 국회에서 쌀개방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토론회 내내 부끄러웠다. 그리고 끝날 즈음 한 농민의 발언은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비참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것은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 내가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법을 전공했다는 것 모두가 나를 부끄럽고 비참하게 했다.

언젠가 쓴 적이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국의 농업을 지키는 것을 아주 옛날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을 한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국가 행정을 맡으면 당연히 농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정책이 나온다. 물론 그 정책이 농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농기계, 농화학, 농자재, 종자 등 농업을 둘러싼 각종 산업이 실질적인 이득을 가져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농업포기 정책이란 없다.

땅덩어리가 넓고 경작규모가 큰 나라에서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남아도는 잉여농산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잉여농산물은 때로는 식량원조로, 때로는 농산물 수출로 그 얼굴을 바꿔가면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얼굴이 어떻건 간에 확실한 건 그 모든 것의 밑바탕에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02년 미국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식량원조라는 이름으로 유전자조작농산물을 보내려고 했다. 당시 유럽은 미국의 유전자조작농산물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럽에 팔아치워야 했던 농산물을 원조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에 떠넘기려 했던 것이다. 아프리카가 이 원조를 거부하자 미국은 그 화살을 유럽으로 돌렸다. 안전에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입을 안하려고 하니 아프리카가 굶어죽으면서도 안받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결국 비인도적이라는 공격을 받은 아프리카는 그 중 몇 개의 나라에서 그것이 종자로 남겨지지 않도록 가루로 만들어 주는 경우에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했고 미국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가루를 낸 후에야 아프리카로 보낼 수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94년 미국은 유전자조작기술을 이용하여 생산한 성장호르몬제를 소에게 주사하는 것을 허용했다. 당시 유럽은 이 성장호르몬제로 기른 소고기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 남아도는 이 미국산 소고기는 고스란히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한동안 LA갈비 열풍이 불었다. 그 소고기를 소비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어떻게 했을까? 소위 유학파 학자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를 안한다는 둥, 외국 학생들은 밤새워 가며 공부한다는 둥, 자신이 유학시절 밤새워 공부하려는데 힘들었다는 둥, 고기를 못먹어서 체력이 딸렸다는 둥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밥상에는 고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곡채식을 해왔던 우리나라에서 육류소비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우리나라의 축산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이 이 수입소고기 덕에 가능해졌다.

이 두 사건을 비교해 보자. 미국의 농축산물에 대해 유럽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을 때 미국은 어떻게든 그 농축산물을 처분하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책이란 결국 유럽이 아닌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떠넘겨지는 농축산물에 대해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 나라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너무 대조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수입을 결정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가?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국민들이 원한다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가? 농산물협상을 우리나라의 편에서가 아니라 수출하는 나라의 편에 서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가?

필리핀에서, 인도에서, 일본에서 온 발표자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얘기했다. 왜 정부와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농업을 살리기 위해 버티고 싸우는 일을 하지 않냐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정치인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이 나를, 아니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다. WTO에 제소될 때 제소되더라도 농업은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생존권이기 때문에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외국사람들이어야 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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