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친환경유기농업정책인가

인증과 규제중심의 친환경유기농업, 지속가능 ‘불가’

  • 입력 2014.07.07 09:18
  • 수정 2014.07.07 09:23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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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먹고, 못생겨도, 더 맛있고 안전한 농산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환경유기농산물의 모습이다.

그런데 지금의 국내 친환경유기농산물은 현대화, 고급화는 물론이고 세련미까지 갖춰야 한다. 우리가 알던 친환경유기농산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소비자 마음에 ‘쏙’ 들도록 보기에 깨끗해야 하고 예쁘게 포장돼 있어야 하며, 농약성분의 ‘ㄴ’자도 검출돼서는 안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생산농가는 검증된 제품을 사용해야만 하고, 환경오염을 원인으로 의도치 않게 농약이 검출 돼도 인증이 보류되거나 취소되는 수모를 겪을 수밖에 없다.

친환경유기농업이란, 물적 순환이 이뤄지는 유기적시스템이라는 바탕 위에 세워진 농법이다. 그러나 지금은 계속되는 규제와 인증제도 속에 유기적 생산 과정이 아닌,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구조로 고착돼 가고 있다. 유기농업이 아니라 유기질을 활용하는 농업이 돼 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도 정부는 저농약인증제도 마저 대책 없이 폐지해 저농약 과수농가 대부분은 혼란 속에서 관행농으로의 회귀를 생각하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생산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전빛이라 기자

농자재 중심의 친환경농업정책

국내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유기식품 등에 사용할 수 있는 ‘허용물질’이 존재한다. 지렁이 또는 곤충으로부터 온 부식토, 대두박·깻묵 등 식물성 유박, 왕겨 및 산야초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허용물질을 사용하는 데는 조건이 따른다.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기농장 부산물로 만든 비료의 경우 화학물질의 첨가나 화학적 제조공정을 거치지 않아야 하고, 대두박·미강 유박·깻묵 등 식물성 유박류는 유전자를 변형한 물질이 포함되지 않아야 하며 최종제품에 화학물질이 남지 않아야 한다.

해수 역시 기존에는 농가가 직접 해수를 가져다 써도 문제가 없었지만 지난 5월 8일 시행규칙 입법예고안에 따라 해수의 사용조건을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규정함으로서 바닷물 사용을 원천적으로 못하게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건들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 유전자 변형물질이 포함되지 않았다거나 화학물질이 남지 않았다는 객관적 증빙서류가 첨부돼야 한다. 증빙서류 첨부는 농가 몫이다.

그러나 개별 농가가 이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조건에 제시된 합성첨가물과 화학물질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기록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기술적 이유로 화학물질검출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객관적 증빙서류를 준비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농약이 검출되면 농민 책임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같은 농민 책임을 덜어주고자 ‘친환경유기농자재 목록공시’를 만들게 된다. 효과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친 환경유기농업에 사용할 수 있는 자재인지 여부만 검증된 제품이 목록공시다. 개별적으로 허용물질의 조건을 검증하기 어려운 농가는 이 목록공시 된 제품들을 사용해 유기농법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목록공시와는 달리 50%이상의 효과가 검증되는 인증품은 그 수가 매우 적고 값이 비싸다.

이처럼 친환경유기농업이 ‘인증’에만 치중되다보니 농가는 친환경농자재를 자가제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목록공시에 등록된 자재 또는 고가의 인증품을 구입해 사용하도록 강제 유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증명하듯 2014년도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 예산 가운데 62%가 친환경농자재 지원에 배정돼 있다. 2015년 부터는 순환농법으로 알려진 녹비작물 종자비 지원사업 마저 중단된다. 유기질비료지원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에서다. 기획 재정부가 녹비작물 종자비 지원사업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이유는 ‘결과적으로 토양에 유기물을 투여함으로써 작물에 양 분을 공급해주는 유기질비료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친환경유기농업정책이 순환농업이 아닌, 유기농 투입재인 외부 대체유기농자재에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고착되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녹비작물의 효과는 단순히 작물에 양분을 공급해주는 역할만이 아니다. 녹비작물을 심게 되면 생물에게 필요 한 먹이와 그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생물다양성을 증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토양 내 유기물 함량이 많아지면 이를 이용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한 농업기술 연구기관 관계자는 “작물을 1~2년 재배하고 끝낼 것 아니지 않는가. 건강한 농경지를 위해서는 녹비작물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농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동근 (사)환경농업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친환경자재인증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며 “외국은 유기농산물이라 하면 종자부터 재배과정을 검토하는데, 우리는 자재까지 또 인증을 한다”고 설명했다.

최 사무총장은 이어 “당연히 농약을 사용하면 안 되지만 오염된 환경에서는 의도치 않게 검출될 수 있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친환경농사를 하는 건데 계속 분석과 규제위주로 친환경농업을 압박하면 누가 친환경 농사를 짓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정의하는 유기농업이란, 농장의 모든 구성요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농업생태계 보호, 종의 다양성, 생물순환과 토양생물활동 증진과 같은 각 요소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지역 내에서의 총체적 생산관리 체계를 말한다. 순환이 없는 유기농업은 진정 한 유기농업이 아님을 의미한다.

대책 없이 폐지되는 저농약인증제

2000년도. 정부는 친환경유기농업 확대정책의 일환으로 저농약인증제를 도입했다. 무농약이나 유기농으로 옮겨 가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정부는 저농약인증 농가들을 무농약이나 유기농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아무런 정책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 10년이 지났으니 저농약인증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한다. 기존 인증농가에 대해서만 2015년까지 인증을 유보한다는 조건으로. 저농약인증 농가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특히 과수농가들이 직격타를 맞게 됐다. 과수는 무농약 또는 유기농 재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농약 인증의 62.5%를 차지하고 있는 과수농가들이 친환경인증 자체를 포기하 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저농약 과실류 생산농가 가운데 무농약 또는 유기로 전환할 의향이 있는 농가는 17%에 불과하다. 이는 곡류의 59%, 채소류의 38%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최근 들어 국내 친환경 재배면적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9년 유기·무농약·저농약 재배면적은 20만1,688ha였지만 2013년도에는 14만1,651ha로 크게 줄어든다. 2009년 19만8,891호였던 농가수도 2013년 들어 12만6,746호로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저농약인증제 폐지를 꼽는다.

과수농가들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에 국내 기후에 맞는 병해충에 강한 품종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습한 국내 기후에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신고’ 배 등의 품종을 재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현재 저농약인증 농가들을 무농약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소득보전의 일환으로 직불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과수와 채소, 곡류를 구분해 직불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GAP’는 우수농산물 아닌 ‘적정농업생산기술’

최근 정부는 친환경농업의 육성보다는 GAP(농산물우수관리제도) 육성을 농정의 핵심과제로 선정하면서, 각종 정책이 GAP 육성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농약 인증을 무농약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아닌 GAP로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농진청 등 관련기관은 친환경농업을 비하하며 GAP 우수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저농약인증 농가의 대부분이 저농약인증제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 GAP를 고려하게 된다.

GAP란 생산부터 수확, 포장, 판매 단계까지 농약·중금속·미생물 등 위해요소를 종합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기준에 부합하는 농산물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되지만 않으면 GAP인증을 받을 수 있어 관행농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를 통해 “GAP는 저농약 인증 농산물보다 더 위험성이 높고 GMO마저 허용하는 사이비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관내 초중고 친환경유기농산물 급식비율을 줄이는 대신 GAP를 ‘우수농산물’이라고 주장하며 GAP농산물 사용을 권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의 GAP농산물 사용 권장에 따라 상당수의 친환경농가들이 판로를 잃기도 했다. 이로 인해 GAP농산물이 우수농산물 로 잘못 인식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GAP인증도 희망하는 모든 농가가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지역 농협과 영농조합법인이 GAP선별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GAP인증 역시 저농약인증제 폐지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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