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은 국민적 합의가 필수

  • 입력 2014.06.29 20:40
  • 수정 2014.06.29 20:44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장경호 녀름 부소장
그동안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 쌀 시장을 관세화로 전면 개방하기로 사실상 내부 입장을 확정한 상태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쌀 개방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전면 개방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직접 당사자인 농민들과 충분한 대화 및 합의 과정조차 무시하고 있다. 그저 설명회니, 공청회니, 간담회니 하면서 충분한 의견수렴을 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상은 정부가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여 온 과정이었다. 쌀 개방과 관련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리고 직접 당사자인 농민의 입장을 수렴하는 과정 보다는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조차 정부 주장대로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엔 의무수입물량이 없어지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에 달한다. 그들에게 관세화로 전환하더라도 매년 40만톤 이상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는 정확한 사실을 말해주었더니 정부가 자신을 속였다고 분노하는 농민들도 많다. 이렇게 직접 당사자조차 정확한 사실관계도 모르고 있다는 현실은 그동안 진행된 정부의 의견수렴 과정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또한 그릇된 사실관계와 일방적인 홍보로 점철된 의견수렴은 형식적인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쌀 개방에 관한 정확한 사실관계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일방적인 홍보가 아니라 경청하는 의견수렴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한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는 마치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측이 의무수입물량을 대폭 늘리더라도 관세화 유예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쌀 개방은 농민단체를 비롯하여 그 누구도 지금까지 주장한 바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장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쌀 개방 방식을 관세화 전환이라는 정부의 입장과 대비시키면서 관세화가 더 유리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쌀 개방에 관한 핵심적인 쟁점은 제대로 검토되거나 논의되지 못한 채 쌀 개방 관련 쟁점이 농민과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못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허깨비를 대비시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정부의 유치한 행태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으로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처럼 쌀 개방에 관한 의견수렴 및 합의 과정이 총체적으로 부실한 가운데 정부가 관세화 전환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다 보니 정부가 주관하거나 혹은 후원하는 설명회 및 공청회 등의 자리에서 극심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쌀 개방 문제는 직접 당사자인 농민은 물론 쌀을 주식으로 하는 국민들에게도 중차대한 사안이다. 쌀 개방에 관한 우리의 의사결정이 형식적인 절차나 요식 행위에 그쳐서도 안 되며, 정부의 독단적인 일방통행으로 처리되어서도 안 된다.

일본은 쌀 시장을 관세화로 전환하기 전에 정부와 의회 그리고 농민이 참여하는 소위 ‘3자 합의기구’를 구성하여 쌀 개방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협의했다. 이 기구에서 관세율, 국내 쌀 대책, 각종 농업대책 등 모든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에 최종적으로 관세화를 결정했다.

그리고 최근 쌀 개방 관련 협상을 끝낸 필리핀 역시 농민단체 대표를 정부의 협상단에 참여시켰고, 협상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렇게 농민들과 모든 합의를 끝낸 후에 최종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우리도 이러한 일본과 필리핀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 쌀 개방 방식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각종 FTA와 TPP 등 관련되는 사항들을 모두 논의해야 하고 국내 쌀 대책 및 농업 대책도 협의해야 한다. 이 모든 사회적 합의과정이 끝난 후에 쌀 개방 방식에 관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합의과정을 무시할 경우엔 국회가 나서서 정부의 일방적인 독주를 제지하고, 국회 주도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내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쌀 개방 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국민적 합의가 필수라는 점을 거듭 되새겨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