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 선거철에만 부르는 이름 되지 않기를

  • 입력 2014.05.24 11:45
  • 수정 2014.05.24 11:46
  • 기자명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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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됐다. 너도나도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농민을 이야기한다. ‘농촌을 살리겠다, 농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하지만 농번기에 손발 걷어 붙이고 밭으로 집으로 일하며 오가는 여성농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정책은 없다. 십년도 넘었지만 지방선거 때마다 여성농민들의 요구는 한결같다. 아무리 얘기해도 바뀐 것이 없으니 매번 같은 정책을 되풀이할 수밖에.

올 초 마늘과 양파 값 폭락에 시름을 앓았다. 지금은? 나아진 게 없다. 정부가 쌀 시장을 개방한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TPP에 가입하려면 미국 기업들의 입맛에 맞도록 ‘한미 FTA의 완전한 이행’을 요구했다는 오바마 대통령. 그 앞에 선 무력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 무능력한 정부의 대처에 세월호의 실종자는 아직도 다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자식을 둔 여성농민들의 마음, 그리고 어두운 농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농민들은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손 치더라도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요구할 것이다. 여성농민 정책의 핵심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농사일 50% 이상을 맡고 있는 66%의 여성농민, 농사일뿐 아니라 농산물 가공의 주체로, 교육체험 프로그램 제작자로, 여성농민의 역할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역에서부터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고 회복시켜 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정작 지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는 여성농민들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은 전무하다.

전담부서와 인력을 마련한다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여성농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재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부서를 만든다는 것은 그 이해당사자를 위한 정책을 고민할 수 있는 의지를 드러내주고, 말로만 여성농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 집행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여성농민 정책의 핵심은 <여성농어업인육성지원조례>를 차근차근 집행해 나가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 시기 여성농민들의 요구를 집약시켜 만들어놓은 <여성농어업인육성법>을 근거로 제정한 조례는 지금 잠자고 있다. 조례에 대한 집행은 여성농민의 삶을 가까운 마을과 지역에서부터 전국을 바꿔낼 수 있는 기반이다. 조례에 따른다면 정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여성농민이 참여하는 정책, 경영능력 향상, 교육 강화로 여성농민이 농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농업의 주체로 나설 수 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복지, 귀농하고 이주한 여성농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제도는 그야말로 모든 세대의 여성농민들을 품어 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후보의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를 앞에 두고 고민한다. 뜨겁게 손을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하겠다 하지만 막상 당선되고 나면 여성농민은 안중에도 없이 등 돌리는 그들. ‘여성농민’이 선거 때만 등장하는 이름이 아니라 공기처럼 늘 필요한 지역사회의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소중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여성농민을 위한 정책의 시작은 농업을 살리는데 있다. 농업과 농촌 없이 여성농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농업의 미래를 위해 식량주권 실현을 들었다. 지역에서부터 종자에 대한 권리를 여성농민으로 되찾아오기 위한 토종씨앗 지키기, 도시의 소비자와 구체적인 관계를 맺으며 소득보장과 권리 향상이라는 목표 아래 마을에서부터 여성농민 생산자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언니네텃밭. TPP, FTA, 쌀 시장 전면 개방 반대까지. 그래서 이번 선거에 나오는 수많은 정책에서 식량주권 실현은 넘쳐나는 후보들을 판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여성농민들은 지역의 농정을 살리고 여성농민의 가치와 중요성을 제대로 아는 일꾼이 누구일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소중한 한 표를 던지게 될 것이다. 농촌 지역의 후보들은 여성농민들의 목소리를 허투루 여기지 말아야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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