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우리의 자화상과 농정

  • 입력 2014.04.19 16:18
  • 수정 2014.04.19 16:19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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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종 서울대 교수
해상사고 소식에서 전원 구출이란 반가운 소식이 사라지고, 많은 인원이 실종된 상황이라는 소식에 쓰려던 글을 접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 글이 인쇄되어 나갈 때는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지 모르지만, 진정 마음 아픈 일이다. 사태가 종료되면 남은 가족들의 눈물과 함께 많은 가슴 아픈 이야기와 안타까운 상황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루한 인간 모습과 영웅들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숨진 이들은 누군가의 어린 자식이자 가장이거나 가족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일진대 참으로 있어서는 안 될, 가슴 아픈 일이 생긴 셈이다.

한편, 쓰던 글을 접고 새롭게 이 글을 쓰게 한 직접적인 이유는 저녁 식사를 위해 간 식당에서 옆 자리에 있던 40대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였다. 마침 식당 TV 화면에 나오는 해상사고 뉴스를 보면서 하는 말이 ‘어, 저거는 턱걸이 하는 힘만 있으면 빠져 나오는 것 아니야. 누가 죽겠어?’ 배는 이미 가라앉아 생사확인이 안 된 이가 이백여명이 넘는다는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너무 가볍게 말하는 이의 발언은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나를 정신 들게 했다. 그나마 그와 동석한 이가 급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 설명과 함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있어서 조금 진정을 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턱걸이 하는 힘만 있어도 충분히 빠져나온다는 이야기를 근거도 없이 되풀이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식사가 나왔을 때 조금은 소란한 식당에서 그들이 자그마한 소리로 무언가 속삭이다가 마지막에 한 ‘아멘’이란 소리에 나는 잠시 매우 비참한 느낌이 들어 수저를 놓고 진정해야 했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이가 너무나 가슴 아픈 타인의 참사에 대하여 그토록 희롱에 가까운 농담조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이것이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너와 나,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나를 마음 아프게 한다. 그도 자신의 아이가 그 배에 타고 있었다면 결코 턱걸이할 힘만 있으면 다 빠져나올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을 특정 종교나 신도들의 이야기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 우리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특정인의 모습일 뿐, 어느 종교를 믿건 이런 모습이 결코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철저한 무관심 내지 방관자인 그는 수잔 손택이 ‘타인의 고통’이란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연민의 이름으로 적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포장하는 현대인들에 비해 오히려 솔직한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자신과 타인, 실제 삶과 그의 종교적 신념 간에 괴리되어 나타나는 이중적 모습은 분열된 우리들의 의식구조, 더 나아가 21세기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사회에 팽만한 이념이나 사상, 종교 갈등이나 지역감정과 다문화에 대한 거부감, 사회 소수자에 대한 편견 등과 같은 여러 문제를 거론할 것까지도 없다.

최근 김용 세계은행(WB) 총재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안에 물과 식량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물과 식량 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깨끗한 물과 공중위생의 중요성과 더불어 기후온난화에 대비하기 위한 친 기후변화 농업 육성의 필요성도 거론했고, 부실 대응은 관련 자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러 나라와의 FTA 협상 과정에서 당장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라는 꿀에 취해 자국 식량 구축 기반을 끊임없이 황폐화시키는 정부가 있다.

과연 농업문제가 타인의 일일까. 나라의 번영된 미래를 말하면서도 자국 식량기반의 구축은커녕 다국적 식량회사와 사료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논리에 따라 농업인들의 고통을 그저 타인의 일처럼 말하는 우리사회 기득층의 모습은 당장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계층의 일이 아니라고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행태에 불과하다. 또 이런 행태를 방관하는 우리 문화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일상 속 깊이 들어온 분열된 우리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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