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의 파란 겉잎과 노란 배춧속이 황토와 뒤범벅이 돼 들판에 널 부러졌다. 산지폐기. 지난 25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 노송리의 김환용씨 밭에서 겨울배추는 그렇게 폐기처분됐다. 폐기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여 남짓. 정성껏 길러온 시간에 비하면 ‘찰나의 순간’이었다. 산지폐기 가격은 겨울배추 최저고시가격의 50% 수준이라 했건만 자식 같은 배추를 갈아엎은 농민의 허망함에 비할 수 없었다.
바퀴마다 배춧잎이 들러붙어 있던 트랙터를 멈춘 후 김씨는 한동안 트랙터에서 내리질 못했다. 두 팔을 운전손잡이에 걸쳐놓은 채 속 깊숙이 담배만을 빨아들였다. 이윽고 트랙터에서 내린 김씨는 “이런 짓거리하며 빚만 짊어지고 있다. 농민이 살 수 있겠냐”며 혀를 찼다. 뒤돌아서서 농로를 따라 걷는 그의 머리 위로 하늘은 여전히 끄물거렸다. 먹구름은 더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