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없이는 농정당국도 없다

  • 입력 2014.03.23 20:42
  • 수정 2014.03.23 20:43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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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농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EPIS)에서 주관하고 한 민간연구단체가 주최하는 농업협상 포럼에 느닷없이 참석해 달라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인 즉 주제는 “TPP 협상동향 및 농업분야 대응방안”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주제의 발제가 대표적인 FTA 찬성론자요 시장론자인 I 대학의 J 박사라는 것이다. 그는 통상경제학자일 뿐이며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연구자도 아니다. 농산물 시장개방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이런 그가 농업분야 대응방안을 발제한다니 농정당국은 감지덕지 했던 모양이다.

더욱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민간연구단체를 내세워 이런 포럼을 주관한 곳이 우리의 정부기관 중에서도 농식품부 산하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기획재정부나 타 경제기관에서 주관한다면 모르되 농식품부 산하기관에서 꼭 이렇게 해야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미FTA는 물론 각종 FTA 협상을 할 때마다 정부보다 앞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외쳤던 사람이었다. 그런 분으로 하여금 농업분야 대응방안을 꼭 발제케 해야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농업분야 대응방안이라는 것이 협상과정에서의 대응방안이든, 농업정책 대안이든 이상하기는 마찬가지 이다.

농정당국의 이러한 행태를 농업·농촌·농민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한심한 집단으로 폄하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까. 물론 이 사건은 농식품부와 관련기관의 행태 중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농정당국의 행태를 비추어 보면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농정에는 언제부터인가 ‘농민’이 없다. 농업·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민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것을 요구하는지를 겸허하게 듣고 경청하는 것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농민없는 농업·농촌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 개방을 위한 각종 FTA와 TPP 등 물밀 듯이 몰려오는 이 시대에 우리 농민들의 고민과 아픔을 보듬고 신명나게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케 할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장서서 쌀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여론몰이를 하는가 하면, 경쟁력을 제고시켜라, 밴처농민을 닮아라, 규모화하라, 생산비를 줄여라,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라, 6차산업으로 발전시켜라 라는 등 저들에게는 하기 쉬운 얘기만을 묶어 정책이랍시고 내놓고 있지 않은가. 이는 다수의 농민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으로서의 농업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농정이라 할 수 없고 산업정책일 뿐이다. 자본과 경쟁의 논리만이 활개칠 뿐이다. 농민이 빠진 농정이라면 농정당국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산업정책당국만 있으면 된다. 우리의 경우 지식경제부나 기획예산처만 있으면 된다는 의미이다. 농정당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농민이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농민이 없는 농정은 이미 의미가 없다.

또한 우리의 농정당국에는 상품으로서의 농산물만 있을 뿐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종합적인 문제의식이 없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자동차, 전자제품과 같은 상품의 문제로 인식할 뿐이다. 우리시대의 농업과 농촌·농민 문제에 대한 치열한 문제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 개방만이 유일한 살길인 양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와 집단에 저항하여 농산물의 무조건적인 개방을 결사 반대하는 것은 농산물이 그냥 단순한 상품이여서가 아니라 농업·농촌·농민문제의 심각성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또한 농산물의 시장자유화와 개방은 식량으로서의 농업부문 뿐만 아니라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그리고 식량주권 등을 고려한 총체적 고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농정당국은 모든 농정의 핵심은 농민임을 철저하게 인식하기 바란다. 농민의 문제를 가운데에 놓고 농업·농촌 문제를 고민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농식품부가 사라질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한다. 특별히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농식품부가 영원히 존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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