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11회

  • 입력 2014.03.23 20:33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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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험을 치러 올라갈 때는 기차를 타고 갔다. 시험에 붙을지 떨어질지 전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마침내 큰 세상으로 나가게 될지, 주저앉아 다시 고향에서 할아버지 말대로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게 될지는 오로지 시험에 달려 있었다. 기차 안에서 선택은 이재형 선생이 구해준 수험서를 꺼내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미 수도 없이 되풀이해서 풀어보았던 문제들이었다. 그 정도 수준이라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대전역에 기차가 멈추었을 때 교복을 입은 학생 둘이 올라와 선택의 자리 맞은편에 앉았다.

“늬는 이번 시험 자신 있지?”

“자신은 무슨? 내 실력이 서울 아들하고 경쟁이 될라나 모르겄다.”

“늬가 안 되믄 우리 학교서 누가 서울로 가겄나? 늬는 될 거다. 나는 솔직히 되도 걱정이다.”

“왜? 그게 무슨 말인데? ”

“아무리 친구네 집이라도 우째 삼년씩이나 신세를 또 진단 말이냐?”

“이제 와서 왜 그래? 나하고 같은 방에서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되는 건데.”

두 학생이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 그들도 선택처럼 서울로 시험을 치러 가는 게 분명했다. 닳아빠진 교복에 삼촌이 입던 검은 코트 비슷한 걸 걸친 선택의 입성에 비해 어딘지 말쑥해 보이고 도회적인 아이들이었다.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면 나이도 두어 살 적을 것이었다. 선택은 그들도 혹시 중앙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러 가는 게 아닌가 싶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저어, 두 분도 고등학교 시험을 치러 가는가 보군요. 반갑습니다.”

그때는 그 나이면 서로 깍듯이 경어를 썼다.

“예. 그쪽도 시험보러 가시나요? 혹시 어느 학교……?”

“중앙고등학교로 갑니다. 시험이 내일이지요.”

“아, 저희는 경복고등학교입니다.”

“그렇군요? 경복이면 서울에서도 제일 좋다는 학교라던데, 공부를 대단히 잘 하신 모양입니다.”

“중앙도 그렇지요. 사실 저희 중학교에서 우리 둘만 경복에 시험을 보러 갑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은 서울로 가는 길에 동무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내 통성명을 하여 키가 크고 허여멀쑥한 애가 임상호이며 반대로 다부지고 눈빛이 초롱초롱한 애가 김재열이라고 알게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둘 다 선택보다 두 살이 적었다.

첫눈에도 선택은 김재열이라는 친구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고 보통이 넘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도 선택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을 넘어선 우정이라고 느껴져서 선택은 부러운 마음조차 일었다. 둘은 전혀 다른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김재열은 선택처럼 가난한 농군의 자식이었고 임상호는 대전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라 했다. 그들 말로 시시콜콜하게 들려준 건 아니지만 대화 속에서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뭐, 중학교 삼년을 거의 이 친구 집에서 얹혀서 살았지요. 하하. 그런데 또 이렇게 서울까지 같이 가려고 하지 뭡니까.”

어찌 보면 숨기거나 주눅이 들 만한 일인데도 김재열은 대범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는 합격해도 걱정이다, 뭐다 하더니. 하여간 합격이나 해라. 참, 정형은 서울에 거처가 있나요? 오늘은 어디서 지내십니까?”

서울역에 도착하면 아버지 친구가 마중을 나올 거라고 했다.

“그렇군요. 혹시 여관 같은 데 묵을 예정이면 같이 가자고 하려 했는데.”

“이 친구 집이 명륜동에 있거든요. 아마 중앙고에서도 멀지 않을 겁니다.”

“집이 대전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멍청하게 묻는 선택에게 김재열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부자들은 전국 곳곳에 집이 한 채씩 있는가 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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