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흙바람 10회

  • 입력 2014.03.16 11:42
  • 수정 2014.03.16 11:43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택은 공민학교에서도 내내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집안은 점점 더 기울어갔다. 선택과 동생의 월사금을 낼 때가 되면 할아버지가 종가로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할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가 되자 선택의 고민은 깊어졌다.

“청년이 제대로 서야 우리나라가 산다. 가난을 물리치고 이 어려운 현실을 바꾸어나가야 하는 중대한 책무가 너희에게 있다.”

국어를 가르치던 이재형 선생과의 만남은 선택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전기였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이자, 해방 전에 이미 협동조합운동을 했던 이재형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학생들에게 사회의식을 심어주려 했다. 그가 열정에 차서 농촌과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격동되었다.

이미 열여덟이 된 선택은 그를 통해 서서히 사회를 알게 되었고 자신이 헌신할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내 힘으로 사회와 국가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리라는 생각이 굳어갔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농촌 현실을 바꾸어보고 싶었다. 선택의 눈에 비치는 고향의 모습은 무지와 가난에 찌들어 술과 도박, 싸움질 따위로 날이 가는 끔찍한 곳이었다. 이재형은 특히 선택을 아껴주었다.


“선택아, 너 서울에 가서 고등학교를 다녀보지 않으련? 곧 시험인데 원서를 사서 지원을 해 보거라.”

“저도 삼촌이 서울로 학교를 보내주신댔어요. 그런데 어느 학교로 가야할 지는 모르겠어요.”

“네 실력이면 서울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라도 시험을 쳐볼만 하다. 사실 나도 감을 잡기가 어려운데, 일단 중앙고등학교 원서를 구해서 지원해보도록 하자. 그러려면 네가 서울을 좀 다녀와야겠다. 학교에 가서 지원서를 작성해서 내고 와야 하니까.”

서울을 갔다 오라는 말에 선택의 가슴은 쿵덕거렸다.

“내가 아는 사람이 트럭을 몰고 서울을 다닌다. 쌀을 싣고 가는데 그 사람한테 부탁을 할 테니 서울을 다녀 오거라.”

선택이 서울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되면 거처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 친구라는 사람 셋이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철도 일을 하던 동료들이라고 했다. 그 중 한 사람은 할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가 대성이 성님한테 큰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성님이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씀을 제게 남기셨어요. 살림이 넉넉지는 않아도 이슬 가릴 집이 있으니까 같은 상에 밥 먹으면서 데리고 있겠습니다.”

서울로 학교를 오게 되면 그의 집에서 다니기로 이미 아버지가 살아있을 적에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다. 삼촌이 말했던 아버지의 준비라는 게 그것을 말한 것이었다. 그들이 다녀간 뒤로 삼촌은 가끔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해 겨울 선택은 읍내에서 서울로 가는 트럭을 탔다. 트럭에는 선택말고도 서울로 가는 사람이 대여섯 명이나 있었다. 운전석 옆에는 보따리를 든 노파와 중년 여자가 탔고 선택은 다른 사람 셋과 함께 짐칸의 쌀가마니 틈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지금은 불과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 때는 꼬박 한 나절을 털털거리는 길이었다. 게다가 가는 날이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눈발마저 휘날리는 비포장 길을 선택은 먹은 것도 시원찮은 뱃속에서 쓴 물이 나오도록 죄다 토하며 기진맥진 서울로 갔다. 혹독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차 삯 정도도 마련하기 어려운 살림이었고 이제 다른 길이 없다는 독한 마음으로 선택은 이를 악물었다.

그날 종로에 있는 중앙고등학교에서 원서를 내고 다시 밤을 도와 내려오는 그 트럭을 탔다. 올 적에는 다행히 일행이 둘 뿐이어서 운전석 옆에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새벽녘에 도착한 읍내에서 다시 삼십 리 길을 걸어 집으로 가야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희부윰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