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머리

  • 입력 2014.03.16 11:39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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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쟁이라도 하려고 종아리를 걷고 논에 들어설라치면 가장 걱정인게 종아리에 달라붙는 거머리였다. 찰거머리는 빈혈증세가 보이는 내 종아리에 어느 새 달라붙어 피를 빨곤했다. 그때마다 논두렁으로 물탕을 튀기며 올라서는 내게 침을 발라서 때리라고 어머니는 가르쳐 주셨다. 거머리가 떨어진 자리에선 한동안 피가 흐르는데 한동안은 논에 발을 들이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다.

우리나라에선 참거머리와 말거머리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세계적으론 500여 종이 서식한다고 한다. 거머리를 잡아서 작은 꼬챙이를 입이나 항문에 대고 밀면 뒤집히는데 속엔 아무것도 없다. 단순히 입에서부터 항문까지가 전부 위(밥통)로 되어서 자기 몸무게 20배량의 피를 빨아먹는단다.

하지만 지금은 구경할래야 구경할 수조차 없는 존재가 되었다. 50년대 후반 전쟁통에 남정네들이 귀해지자 여성들도 어쩔 수 없이 모내기에 나섰다. 여성들의 종아리에 붙는 거머리는 최고의 기피대상이었다. 한때 도시여성들이 신다가 버린 스타킹을 농촌에 보내자는 운동도 있었다. 그러다가 80년대에 노란 물장화가 등장하면서 거머리도 사라져 버렸다.

농업이 석유화학의 도움을 받으면서 거머리와 함께 농민들도 하나둘씩 사라진 것이다. 거머리는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사라지고 농민은 자본의 지배로부터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중이다. 거머리 보다 농민들이 더 질기게 살아남아있지만 이젠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한-캐나다 FTA가 체결되었다는 소식이다. “자동차는 웃고 축산농민들은 운다” 는 제하의 신문기사를 보며 농민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이미 우리의 식탁은 70%넘게 수입농산물로 채우고 있다. 캐나다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또 얼만큼 밥상을 내주겠지. 호주도 마찬가지였고. 한-중 FTA까지 그렇게 야금야금 내주고 말겠지. 고스톱 판에서 마치 일곱장의 패 중에 4장의 서비스 패를 들고 있는 놈처럼 농업을 협상마다 히든카드로 내밀겠지.

거머리는 요즘 찾아보기 어려워서 의료에 이용하기 위해 부러 기르는 농장에 가야만 볼 수 있다. 논에 수도 없이 많아 농부들을 괴롭히던 거머리가 어디로 갔나했더니 지금 거머리는 농민들의 몸에 수도 없이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음을 본다. TPP가 무엇인가. 자본의 확장이다. 자본의 속성상 작은 자본은 큰 자본에 먹히고 마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장의 확장 말이다. 거기에 농민들은 히든카드로 희생되어야 한다.

거머리가 없어진 농사가 오래갈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진즉에 하지 못했다. 거머리가 없어 논에 들어갈 때 맘이 놓이는 것에만 정신을 팔았다. 그러는 동안에 자본이라는 거머리에 둘러싸이고 있었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려고 안했고 알지도 못했다. 농민들에게 남은 한방울의 피까지 빨아내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러기에 이젠 누구도 농민이 아프다고 농업이 죽어간다고 소리 내 말하지 않는 세상이다. 농업이 죽어간다고 소리쳐 주실 분 어디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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