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민식량보장법과 한국의 쌀시장개방

  • 입력 2014.03.14 13:40
  • 기자명 장경호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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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작년 9월 인도의 국민식량보장법(national food security act) 제정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인도 정부와 집권 여당이 앞장서서 제정한 국민식량보장법은 인도 국민의 약 68%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무료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낮은 가격으로 기본적인 식량을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쌀과 밀 등 공급에 필요한 식량은 인도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최저지지가격에 수매하는 방식으로 확보하도록 되어 있고, 수매에 필요한 자금 연간 약 190억 달러(약 20조3,000억원 수준)는 인도 정부가 전액 부담하도록 했다.

이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식량주권(food sovereign ty) 혹은 먹거리 기본권(food right)을 국가가 담당해야 할 주요한 의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과 먹거리 문제를 농민이나 국민이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떠넘기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규정한 것이다. 식량주권이나 먹거리 기본권을 헌법 및 기본법 등에 명문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유엔(UN)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식량보장을 중점적으로 권고하고 있고,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의 권리헌장을 제정하고 있는 중이며,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아직도 농업과 먹거리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한국의 현실은 세계적 흐름에 뒤처져 있으며, 인도 보다도 못한 상황이다.

다음으로 인도 국민식량보장법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비록 인도와 한국의 구체적인 조건은 서로 다르지만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과 생산자 농민의 기본권을 동시에 보장한다는 기본 원리는 서로 동일하다. 그러나 인도는 정부와 집권 여당이 앞장서서 이 법을 제정한 것이고 한국에서는 진보당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을 뿐 정부와 정치권 대부분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 도입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제도의 목적과 시행방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도가 추진하고 있는 최저지지가격에 의한 수매제도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도와 유사한 제도라는 점에서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인도 정부가 국민식량보장법 제정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문 위반문제를 적극적인 통상협상을 통해 해결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아주 큰 시사점을 준다. 인도 정부가 최저지지가격으로 농산물을 수매하기 위해서는 연간 약 190억 달러 정도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데, 이는 WTO에서 허용하고 있는 보조금 총액을 초과하기 때문에 농업협정문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인도 정부는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다른 국가들이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도록 적극적인 통상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작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서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 “개도국이 식량안보 목적의 공공비축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보조금 한도 초과시 영구적 해결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제소를 자제하기로”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인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적극적인 노력이 WTO라는 장벽을 넘어서도록 만든 것이다.

이 점은 올해 쌀시장개방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다. 쌀시장개방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는 관세화 전면개방을, 농민들은 현상유지를 각각 주장하면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현상유지가 쌀농업 보호에 더 좋은 선택인 것은 맞지만 실현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관세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 문제는 WTO 농업협정문에 관한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판단은 WTO의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정부는 현상유지가 더 좋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현상유지를 위한 그 어떠한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관세화 전면개방만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농업협정문 위반 문제를 적극적인 통상협상을 통해 극복한 인도 정부의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 정부의 통상협상 의지와 능력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국민식량보장법 제정 및 적극적인 통상협상에 관한 인도 정부의 의지와 능력을 조금이라도 배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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