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와 호갱

  • 입력 2014.03.07 10:15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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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놀라운 세상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이, 자본주의가 팍팍하게 삶을 옥죄는 방식이 너무 무섭고 놀랍다.

호구는 바둑을 둘 때 세점 사이로 둘러 싼 곳에 돌을 두는 것을 말한다. 바로 다음수로 잡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며 이르는 말이다. 호갱은 무엇인가. 호구고객의 준말이란다. 전화기너머로 들려오는 고갱님과 호구가 합쳐진 말이다. 고객님의 ㄱ 이 뒷말의 ㄴ 과 합쳐서 나오는 고갱님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소비자를 귀하게 부르는 말이 됐다.

고객은 상점이나 식당 등에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으려는 사람이라고 어학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갱님은 사려하거나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려거나 서비스를 받으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접근해 상품과 서비스를 팔아보려는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상술에 말려든 사람을 이른바 호갱이라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 비한 호구는 너무도 순진무구하다.

호갱은 신자유주의 자본이 만든 말이다. 호갱이란 말속에 녹아있는 자본의 논리에서는 상존의 논리를 찾기 어렵다. 속고 속이는 관계에서 상품과 서비스가 존재할 뿐이다. 물론 이는 최대이윤을 요구하는 자본의 속성이기도 하다. 계속적인 페달 밟기를 해야 쓰러지지 않는 자전거처럼 자본은 계속적인 성장이 있어야 망가지지 않는다. 그런 성장의 동인이 고갈되어가는 상황에서 자본은 호갱을 만들어 내야만 살아남는다. 당한 놈은 죽겠지만 자본은 당장 삶을 연장할 수 있다.

쌀개방문제로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정부의 공식입장은 국익과 쌀시장 보호를 위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내부적 의견은 이미 개방 즉 관세화로 가고 있다. 정부는 늘 그랬다. 농민들을 속이고 소비자를 속였다.

대표적인게 자동관세화론이었다. 정부는 2012년까지만 해도 예의 자동관세화를 주장했다. 농민이나 소비자를 호구로 본 것이다. 협정문 어디에도 자동관세화는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제는 의무수입물량이 배로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현상유지(stand steel)가 있다거나 인도의 예가 있다는 말은 없다. 호구들에게 그런 말은 숨겨야한다.

농업이 세계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식량이, 먹거리가 어떻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식량이, 먹거리가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자체가 가진 에너지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은 그 에너지의 총량뿐 아니라 형태나 위치에 따라 상품가를 다르게 결정한다. 그것은 옳지 않다. 이경해 열사의 “농업은 상품이 아니다” 란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늘 농민을 속였다. 경쟁, 경쟁을 외쳤다. 농민들은 오래전 정부의 최대 호갱이 되었다. 오늘도 호갱은 씨뿌릴 땅 한 뼘을 더 늘리려 지주를 만나러 읍내 다방으로 간다. 거기서도 농민은 호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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