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왜 유통까지 신경써야 하나”

  • 입력 2014.03.07 10:06
  • 수정 2015.11.08 00:1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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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그냥 아.사.직.전. 이라고 쓰시면 됩니다.” 서울시 친환경급식 제동으로 인한 농가의 상황을 들으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김홍열(58)씨는 농담 섞인 푸념을 던졌다. 씁쓸한 웃음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양 공허해 보였다. 그러나 이내 자세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의 표정에는 사뭇 진지하고 비장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충남 서천에서 쪽파와 엽채류 등을 재배하는 김씨가 친환경 무농약 농사를 시작한 것은 6년 전. “보통 4kg당 1,500~3,000원 하던 쪽파가 600원대까지 떨어졌어요. 이렇게 등락폭이 커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 보겠다고 친환경을 시작한거죠.”

▲ 김홍열씨가 수확을 못하고 방치해 줄기가 분열돼버린 처치곤란의 쪽파를 뽑아 보이고 있다. 김씨는 “하고 싶은 농사에만 매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주변 농가들과 처음 친환경 쪽파를 재배해 출하할 무렵 서울시 학교로의 납품 비율은 생산량의 30% 정도. 생산량 조절의 노하우가 쌓이고 2011년 서울시 친환경무상급식 제도가 본격화되면서 70~80% 가량을 학교 급식으로 납품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서울시 학교급식의 친환경 농산물 사용 비중이 줄어들고 서울친환경유통센터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올해는 20% 안쪽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전체 작물과 그 수익을 따져본다면 10% 이내로 줄어든다.

학교급식 이외의 친환경 작물 판로는 거의 없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생협 등의 루트를 통해 소량 출하하기는 하지만 학교급식에 1,000박스 출하할 동안 5박스를 출하할 정도로 그 양이 미미하다. 학교급식에 출하하지 못한 나머지 물량은 친환경이 아닌 일반작물로 출하하거나 밭에서 그대로 썩히게 된다.

“친환경 쪽파는 4kg당 3,500원 정도를 수익 마지노선으로 잡아요. 일반 쪽파가격은 많이 나와야 2,500~2,700원이니까, 수확하자면 인건비도 안나와요. 일반 쪽파 공급량이 부족할땐 밑지고서라도 수확해서 보태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갈아엎는거죠.” 김씨의 밭에도 지난해 10월에 출하했어야 할 쪽파들이 서울친환경유통센터 계약체계 변동으로 판로를 잃고 수확되지 못한 채 겨우내 방치돼 있다.

김씨와 함께 인근에서 친환경 쪽파를 재배하는 농민은 17명 정도. 경기도 학교급식에도 출하하고 있지만 경기도는 지역내에서 생산된 작물로 급식 물량을 우선 충당하기 때문에 타지역 작물 수요가 많지 않다. 결국 서울시 학교급식이 이 지역 친환경 농민들에게 절대적인 판로인 셈인데 당장 판로가 없어지다시피 해버린 상황이다.

“농민이 왜 유통까지 신경써야 하고 정치권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농민들이 하고 싶은 농사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하는데, 그게 안되네요.” 한시간 남짓 끊임없이 고민을 쏟아내던 김씨의 마지막 한 마디가 묘한 울림으로 남는다.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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