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건강한 삶·지역 공동체

  • 입력 2014.03.02 18:48
  • 기자명 이인동 안성의료생협 안성농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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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의사가 된 것이 1986년이니 이제 2년만 지나면 30년입니다. 그동안 많은 배움도 있었고 수많은 환자를 만났고 보람을 느낀 경우도 많았고, 실수할 때도 있었으나, 그보다 많은 경우에 의사로서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가장 많았습니다. 질병은 수없이 많고, 의학이 발달했지만 아직도 질병 자체를 완벽히 파악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질병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열망을 비웃는 듯합니다.

인간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이 항상 행복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원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 증진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현대인은 여러 가지 유해 환경과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에 다양한 만성 생활습관성 혹은 환경 질환이 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혈관 질환과 각종 암입니다. 이로 인한 사망이 전체의 70% 정도 됩니다. 이런 질병들은 대개 완치가 어렵고 많은 경우 평생 치료 받아야 하며, 심각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많은 수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질병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연명을 해야 하는지는 많은 윤리적 철학적 의문을 갖게 합니다. 세간에는 의사 역할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이 쓴 책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현대 의학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책들은 제목도 선정적인 경우가 많아 사람들을 현혹하고 환자들로 하여금 근거가 희박한 치료를 시도하게 하는 폐해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쨌든 현대 의학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퍼져 있는 것은 지나친 테크놀로지의 사용, 비인간적인 의료 행태, 치료 의학 편중, 과도한 비용, 완치하기 힘든 질병의 증가 등 현대 의학이 갖고 있는 한계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선에서 환자를 만나는 의사로서(의사든 한의사든 치과의사든 상관없이) 이런 문제들이 환자 개개인에게 나타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약을 쓰고 검사를 하고, 시술을 시행하면서 현저한 치료 효과가 없을 때, 진료실에 앉아서 환자를 만나면서 환자의 환경이나 직업, 생활습관에 개입할 여지가 적을 때,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휴식과 이완 적절한 영양이 질병 치료의 수단임에도, 쉴 수 없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힘든 환자들을 대할 때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인권과 자유, 공정을 보장하는 사람 중심의 정치, 돈이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경제 시스템, 배려와 연대의 사회 보장 시스템, 지역과 마을이 살아 있는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0년간 의료 생협 진료실에서 여전히 환자를 만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의사가 아닌 지역 사회가 건강해져야 우리 모두가 건강해진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의료생협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현재는 부족하지만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상상해 보고 그런 생각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우리 모두가 건강해지는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이인동 안성의료생협 안성농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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